어디에도 없는 사람, 걱정하지 마세요

by 행복한독서

어디에도 없는 소녀

마갈리 르 위슈 글·그림 / 윤민정 옮김 / 128쪽 / 22,000원 / 주니어RHK



기타와 드럼스틱을 들고 횡단보도를 건너는 네 명의 남자. 책 표지만 봐도 비틀즈가 등장하는 이야기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들의 열한 번째 앨범이자 마지막 앨범인 『Abbey Road』의 커버 이미지를 단번에 떠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책 표지를 좀더 눈여겨보면 책의 주인공은 비틀즈에 앞서 걷는 소녀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횡단보도와 그 옆으로 늘어선 가로수와의 크기 비례나 표현 방식을 볼 때 작품 현실 속 공간을 걷는 건 소녀이고, 비틀즈는 소녀의 상상으로 예상된다.


소녀의 이름은 마갈리, 열한 살이다. 그리고 비틀즈를 사랑한다. 마갈리는 작가의 이름이니 자전적 이야기라는 사실 또한 알 수 있다. 이야기의 배경은 1990년대 초반이다. 당시 중학생이던 마갈리의 눈에 비친 패션 트렌드, 드라마와 음악 등 대중문화가 그림 구석구석에 깨알같이 펼쳐진다. 당시 청소년이던 내게 익숙한 문화들도 찾아볼 수 있으니 프랑스 독자들은 더 재미있게 읽겠다 싶다.


하지만 중학교에 입학해 들뜬 마갈리는 심각한 문제에 부딪힌다. 학교 공부에 대한 부담감이 심해지다가 급기야 ‘학교공포증’이라는 진단을 받기에 이른 것. 학교가 두려워 등굣길에 매번 구토를 할 정도다. 정신분석학자인 부모님은 다행히 마갈리의 심리적 어려움을 수용하며 통신 과정으로 홈스쿨링을 하도록 도와준다. 마갈리는 홈스쿨링에 더해 발레, 미술, 연극 활동으로 학교 밖에서도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고, 학업이 아닌 활동이 선사하는 편안함을 느낀다.

이러한 일상에서 비틀즈는 마갈리에게 열정과 기쁨과 위안의 원천이다. 비틀즈에 빠져 그들의 모든 음악과 역사를 섭렵하는 마갈리를 보면 원조 ‘덕후’가 바로 여기 있구나 싶다. 비틀즈 데뷔 30주년을 기념해 싱글 음반이 재발매되자 카세트테이프를 다섯 개나 사는 장면에서는 요즘 아이돌 덕후를 보는 듯 웃음이 난다.


마갈리의 현실은 흑백톤이지만 마갈리의 상상 속 비틀즈의 세계는 멤버들을 상징하는 네 가지 색깔이다. 마갈리는 학교에 가거나 친구들과 어울리는 게 어려울 때마다 노란 잠수함(당연히 비틀즈의 노래 「Yellow Submarine」을 상징한다)에 숨어든다. 거기에서 얻은 위안으로 결국 마갈리는 학교에 다니고 친구들을 사귀는 걸음을 다시 내딛는다. 청소년기의 혼란 속에서도 성장하고 싶다는 마음을 지니게 된다.


음악이든 책이든 그 무엇이든 예술과 문화가 청소년에게 기쁨과 위안이 되어주는 장면이 감동적이다. 서지 사항에 표기된 책의 원제는 ‘Nowhere Girl’. 이 역시 비틀즈의 노래 가사인 ‘Nowhere man don’t worry(아무 데도 없는 사람, 걱정하지 마세요)’에서 따온 문장이겠다.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좋아하는 것들 속에서 기쁨을 찾으라고 말해주고 싶어진다.


김유진_아동문학평론가, 『나는 보라』 저자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4년 1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keyword
작가의 이전글지구 구성원을 돌보고 지키는 지식과 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