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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된 아름다움을 입다

by 행복한독서

옷을 사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소연 지음 / 324쪽 / 17,000원 / 돌고래



수년 전, 환경 수업 강의로 자료 조사를 하며 패스트패션 산업의 적나라한 현실을 알게 되었다. 한해 800억 벌이 전 세계에서 쏟아져 나온다. 의류산업 전 과정에서 배출된 탄소의 양 또한 상상 그 이상이다. 거대한 산업의 규모에 놀랐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 옷의 원재료는 대부분 석유다. 화석연료에서 채취된 원재료들은 각종 유독한 화학 처리를 거쳐 제조된다. 이후의 유통, 판매, 폐기까지 모든 단계마다 인간과 동물 그리고 강과 바다에 그야말로 학살 수준의 오염이 발생한다. 세탁 시 미세플라스틱이 발생하지 않는 순면의 옷 또한 그 제작 과정이 친환경적이지는 않다.

이 책의 저자는 우연한 기회에 의류산업이 어떻게 환경을 파괴하는지 알게 되었고, 그 후 새 옷을 사지 않기로 결심한다.


옷을 안 사고도 살 수 있다고? 타인의 평가에 신경 안 써도 되는 사회생활을 하지 않는 사람인가? 아니면 애초에 외모에 전혀 신경을 안 쓰는 사람일까?


아니다. 저자는 미학을 중시하는 20대 여성이다. 자신만의 멋을 포기하지 않으며 열정적으로 일하는 여성이다. 사실 저자는 ‘언제나 옷을 샀다고’ 고백할 만큼 패션과 옷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정형화된 아름다움을 상품화한 지 오래되었고 그 주 대상은 젊은 여성이기에 저자 역시 자연스러운 경로를 따랐을 뿐이다. 하지만 패션산업의 이면을 들여다본 이후에는 더 이상 새 옷을 살 수 없었다. 그렇다고 멋 부림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저자는 진정한 아름다움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치밀하게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그 치열한 과정과 결과가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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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스트패션의 해악과 관련한 책들도 꽤 나왔다. 하지만 저자는 의류산업에 대한 모든 것을 파헤치기라도 할 심산으로 전 분야를 아우른다. 소위 명품이라고 불리는 고급 브랜드가 어떻게 패스트패션과 뒷거래를 하고 있는지 알리고, 친환경으로 위장한 리사이클링 의류산업의 현실에 대해 말하는 것도 거침이 없다. 소위 ‘윤리적 소비’에 대한 문제의식이다. 빈티지 숍에서 구매해도 실제 빈티지가 아닐 수도 있다고 한다. 이쯤 되면 소비자로서 머리가 아파지기 시작한다.

대체 윤리적이면서도 아름답게 옷 입는 방법은 없는 걸까?


걱정하기 전에 이 책을 펼쳐보자. 저자는 의류산업의 적나라한 현실뿐만 아니라 환경을 고민하면서도 동시에 멋 부림도 놓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한 대안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환경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은 누구나 인지하지만 살아온 관성으로 실천은 쉽지 않다. 환경운동을 위한 개인적 실천들의 여러 가지 목록이 있지만 막상 행동하기 어렵다면, 옷을 덜 사는 것으로 시작해 보면 어떨까? 비건, 플라스틱 안 쓰기보다는 비교적 쉽다. 책에 소개된 저자의 친절한 안내를 따른다면 더욱 즐겁게 실천할 수 있을 것이다.


수년 전부터 과학자들이 예측했던 전 세계 기후 재난들이 예상보다 빠르게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암울한 현실 앞에서 개인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 무기력에 빠지기 쉽다. 그럼에도 실천하고, 함께 해보자고 다정하게 독려하는 이들이 있기에 실낱같은 희망을 품어본다. 희망은 어딘가에 존재하는 게 아니라, ‘지금, 여기’ 행동하는 실천에서 비로소 만들어지는 것이기에.


임혜영_전 생태인문서점 에코슬로우 대표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4년 1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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