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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학교로 가는 길

by 행복한독서

학교 가는 길

로젠 브레카르 글·그림 / 박재연 옮김 / 72쪽 / 20,000원 / 노는날



앞표지부터 마음이 끌렸다. 한 발 한 발 더 높은 곳을 내디디며 올라가는 어린이의 뒷모습과 가파른 바위 끝에 아슬아슬 걸터앉아 저 너머 어딘가를 내다보는 어린이의 옆모습이라니! 유치원에서 아이들과 함께하며 바깥 놀이할 때마다 마주했던 모습이라 반가웠다. 그리고 궁금했다. 여기는 어디일까. 무엇을 보고 있을까.


진노랑 면지를 들추면 속표지에, 노랑 불빛을 켜고 바람 사이를 가르는 빨간 트럭, 거기 올라탄 검정 개와 두 아이가 보인다. 이어지는 첫 장면은 보랏빛 하늘 아래 어둑한 새벽. 꼬불꼬불한 길을 달려온 학교 버스를, 두 아이는 눈앞에서 놓치고 만다. 실랑이 끝에 걸어서 갈 거라며 길 떠나는 누나와 뒤따르는 동생. 시간 없으니 지름길로 가야 한다고 발걸음 재촉해 걸어간 낯선 길 위에서 남매는 눈부신 아침 해를 만나 감탄하고 발걸음을 멈춘다. 책가방을 벗어놓고 나뭇가지를 든다. 그렇게 월요일 아침, 남매의 일탈이, 모험이 시작된다.


경찰을 피해 누군가의 보트를 타고 건너간 낯선 동네에서 검정 개를 만나고, 철문 담을 넘고, 잡동사니 가득한 고물상에서 보물을 발견하고, 다시 도망가고 그러다 보물을 놓치고….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 위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어른들을, 너무나도 아름다운 자연 풍광들을 새롭게 마주한다. 남매가 발가벗고 바다와 파도와 어우러지는 순간, 자유로운 모험은 절정에 이른다. 충분히 놀고 난 다음, 트럭을 얻어 타고 검정 개와 함께 동네로 돌아온 남매. 셋이 꼭 붙어 앉아, 해 지는 풍경을 바라보는 뒷모습이 충만하다. 이어지는 마지막 장면들엔 미소와 통쾌함, 그리고 따스함이 담겨있다.

그림3-학교가는길_본문.jpg

책을 다 보고 나면 ‘우회’라는 뜻의 원제(Le detour) 대신 새로 붙인 『학교 가는 길』 제목이 절묘하게 다가온다. 학교 가는 길을 벗어난 새로운 길 위에서 직접 보고 듣고 움직이며 만난 더 넓고 커다란 세상, 남매를 둘러싼 시공간이 또 다른 ‘학교’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남매가 검정 개 아샵과 만나고 헤어지는 사이 움튼 소중한 마음 기운을 느끼며, 사랑하는 어린이들을 이처럼 또 다른, 학교 가는 길로 초대하고 싶어진다. “월요일이다!” 외치며 즐겁게 뛰어들 수 있도록….


우회하는 자유를 제대로 누려보지 못한 어른들과도 함께 만나고픈 책이다. 우회의 시간을 아는 어른들이 울타리가 되어줄 때 새로운 배움터 세상이 가능할 테니까. 구아슈와 색연필로 남매의 모험 서사를 놀랍도록 생생하게 그려낸 이 책은 작가의 첫 번째 그림책이다. ‘2023 IBBY 최우수 그림책상’과 ‘프랑스 저작권협회 선정 그림책 신인 작가상’ 황금색 스티커가 빛나는 『학교 가는 길』. 여기 깃든 첫 마음이, 하루하루 자라나는 마음에 닿아 즐거운 힘이 되는 상상을 해본다.


이숙현_전 구미 금오유치원 원장, 『그림책이 마음을 불러올 때』 저자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24년 2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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