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여행하는 법
마리 꼬드리 글·그림 / 최혜진 옮김 / 48쪽 / 16,000원 / 다그림책
코로나 팬데믹으로 여행이 자유롭지 않았던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랜선 여행이 유행했다.
그림책 『우리가 여행하는 법』에 나오는 두 가지 다른 스타일의 여행 방식이 그래서 무척 공감되었다. 필레아스는 자그마한 세계를 하염없이 바라보길 좋아하는 고양이다. 굳이 멀리 떠나지 않아도 자신의 방에서 좋아하는 이야기들로 상상의 세계를 펼치며 여행하는 기분을 느낀다. 그에 반해 페넬로페는 모험을 좋아하는 고양이다. 낯선 곳으로 떠나 대자연을 누비거나 새로운 곳에서 살고 싶어 한다.
갑자기 내일 당장 여행을 떠나자는 페넬로페의 말에, 필레아스는 시큰둥할 뿐이다. 자신은 집을 지켜야 된다며 떠나는 페넬로페를 배웅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도착한 여행지의 호텔에서 여행 가방을 풀던 페넬로페는 그만 깜짝 놀라고 만다. 집에 있는 줄 알았던 필레아스가 가방 속에 숨어있다 튀어나와서였다.
그렇게 시작된 둘의 여행은 서로의 취향을 존중하고 이해하며 공감해 가는 여정이나 다름없다. 호텔 방에서 거리에서 들려오는 새롭고 낯선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필레아스, 코끼리 등에 올라타서 평범한 것조차 새롭고 아름답게 바라보는 페넬로페. 이 둘의 너무도 다른 스타일의 여행이 서로에게 시나브로 스며들어 갔기 때문이다.
프랑스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는 ‘진정한 여행이란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각을 갖는 것이다’라고 했다. 그런 점에서 그림책 『우리가 여행하는 법』은 자신만의 세상을 벗어나 새로운 시각을 획득해 가는 변화와 성장통의 이야기라고 일컬어도 무방하다. 필레아스와 페넬로페처럼, 나 역시 그동안 여행의 취향에 관해, 더 나아가 가장 긴 여행이라 부를 수 있는, 삶의 또 다른 방식에 대해 생각해 보았으니 말이다.
문득, 그림책의 장면 장면마다 펼쳐지는 풍부하고 화려한 색감이, 필레아스와 페넬로페가 여행하는 중에 느낀 오감의 희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궁금해졌다. 페넬로페는 왜 태양빛을 닮은 노란 고양이일까? 또 필레아스는 왜 푸르름을 머금은 먹빛의 고양이일까? 외향적이고 활발한 페넬로페와 내향적이고 사색적인 필레아스의 성향을, 밝은색과 어두운색으로 표현한 것뿐만 아니라, 그 안에 빛과 어둠 같은 음과 양의 마주함과 어우러짐이 있는 것은 혹시 아닐까?
페넬로페가 여행지에서 만난 새 친구들과 늦게까지 놀다 호텔 방에 들어와 기진맥진하여 기운이 없어졌을 때, 그래서 늘 바깥세상을 향해 호기심으로 뛰어들던 페넬로페가 집에 가고 싶다고 처음으로 필레아스에게 말했을 때, 필레아스가 마침내 바깥세상으로 나간 연유가 된다. 마지막 장면에서 필레아스는 집으로 돌아갈 기차표를 사기 위해 멋지게 양복을 차려입고 세상으로 나간다. 그런 필레아스의 모습에서 활기차고 씩씩한 페넬로페의 모습을 발견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윤정선_작가, 동화 『루아의 시간』 저자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24년 2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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