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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상품사슬의 연결고리와 굴레의 역사

by 행복한독서

기호와 탐닉의 음식으로 본 지리

조철기 지음 / 376쪽 / 25,000원 / 따비


글 쓰는 일을 즐긴다. 글쓰기는 고도의 지적 유희이다. 고도의 지적 유희를 즐기기 위해선 고등 사고력을 담당하는 뇌의 전두엽을 십분 활용해야 한다. 전두엽이 활성화되면 뇌가 필요로 하는 에너지양이 급증한다. 글을 쓸 때는 뇌로 충분한 에너지를 보내기 위한 대비가 필수라는 거다.

글 작업의 효율을 높이는 데는 경험적으로 두 가지 방법이 좋다. 하나는 뇌를 각성 상태로 만들어주는 카페인을 섭취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열심히 일하는 뇌에 에너지, 그러니까 포도당을 원활하게 제공할 수 있는 달콤한 주전부리를 곁들이는 일이다. 실은 두 행위의 관계는 독립변수가 아니라 종속변수다. 가령 커피를 마시면서 초콜릿을 먹거나 차를 마시면서 비스킷을 곁들이면 앞선 두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할 수 있다. 조합이나 먹는 순서를 바꿔도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글을 쓰는 데 이만한 보조재를 찾기 힘들다는 것!


『기호와 탐닉의 음식으로 본 지리』는 글쓰기처럼 집중력이 필요한 사람이라면 곁에 둘 법한 다양한 기호 음식에 관한 책이다. 그래서 솔깃하다. 저자는 차와 설탕, 초콜릿, 팜유, 바나나, 새우, 와인을 소재로 음식의 세계사를 소개함과 동시에, 지리학자답게 여섯 소재의 공간적 의미도 함께 조명한다.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각각의 소재에 얽힌 시공간의 이야기를 입체적으로 그릴 수 있다. 생각해 보면 책에서 소개하는 여섯 개의 상품은 인간과 자연의 상호 작용이 만든 훌륭한 걸작들이다. 그런 면에서 각각의 소재에 담긴 시공간의 의미를 파악하는 일은 지구촌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영양제를 고루 섭취하는 일과 같다.

동네1-1910년경 뉴올리언스.jpg 1910년경 뉴올리언스

책의 모든 챕터에 등장하는 공통 분모는 상품사슬(Commodity chain)이다. 상품사슬이란 쉽게 말해 물건의 이력서다. 종합 건강검진을 통해 내 몸의 이력을 살피듯, 상품사슬은 상품의 이동 과정을 수요와 공급의 관점에서 분석한다. 사물이든 비사물이든 어떤 것에 관한 출생의 비밀은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설탕을 예로 들어보자. 설탕은 사탕수수의 몸으로 만든다. 대지에서 베어진 사탕수수는 즉시 설탕 가공 공장으로 운반된다. 사탕수수의 몸은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에 통과하면서 즙이 되는데, 이 즙이 바로 설탕 생산을 위한 원료당이다. 원료당은 세계 여러 나라로 수출되며, 원료당을 수입한 국가는 이를 활용해 다양한 형태의 설탕 제품을 만든다. 일상에서 만나는 과자와 음료, 제과 등의 완제품에는 이미 상당한 설탕이 모습을 바꾼 은폐한 설탕 제품들이다. 요약하자면 설탕이 우리에게 오는 과정은 크게 수확, 가공, 유통, 소비의 단계로 구분된다. 이 과정에 관여하는 인간의 모든 활동은 돈을 벌기 위한 행위이기도 하다.


저자는 상품사슬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상품별로 생산에 관여한 주체들이 얼만큼의 이익을 가져가는지에 관해서도 알려준다. 이 책에 소개된 여섯 개의 상품 모두 상품사슬의 과정에서 심각한 불평등의 문제점을 안고 있다. 초콜릿의 원료인 카카오가 대표적이다. 초콜릿 공급 주체별 이익 배분을 보면, 무려 7~10년 동안 해충과 무더위와 싸우며 카카오나무를 기른 농부가 전체의 약 6퍼센트 이익을 가져간다. 반면 최종 상품인 초콜릿을 만들거나 이를 구매하여 판매하는 소매업자의 이익은 40퍼센트 남짓으로 매우 높다. 상품사슬의 주체별로 무려 6~7배 가량의 불평등이 발생하는 구조다. 저자는 단원 말미에 이러한 문제에 관한 원인과 결과, 대안을 꼼꼼하게 제시한다. 그래서 한 단원씩 차근차근 읽다 보면 귀에 익은 공정 무역, 아동 노동 착취, 기후변화 등의 메가 이슈에 관해 곱씹을 수 있다.

동네1-스리랑카 차밭.jpeg 스리랑카 차밭

‘기호와 탐닉’이라는 주제도 흥미롭다. 이는 축복받은 자연 조건이 어떻게 저주의 굴레에 빠졌는지를 설명하기 위한 핵심어다. 책에서 꽤 많은 분량은 기호 작물에 최적화된 축복받은 환경이 플랜테이션의 과정을 통해 어떻게 저주의 굴레에 빠지는지에 관한 이야기다. 하지만 마지막 와인 단원은 여느 단원과는 살짝 결이 다른 느낌을 준다. 아무래도 세계적으로 와인 산업을 이끄는 곳, 전통적으로 포도 품종을 개발해 산업화를 이룬 곳이 모두 유럽이기 때문이다. 유럽은 기호 작물의 주요 생산 주체이기보다는 소비 주체에 가깝다.

사탕수수, 기름야자, 차나무, 커피나무, 카카오나무, 바나나나무 같은 기호 작물은 주로 열대 및 아열대 기후 지역에서 생산된다. 하지만 포도나무는 다르다. 포도나무는 온대 지중해성 기후 지역이 생육에 최적화된 공간이다. 유럽, 특히 남부 유럽 지역은 여름철 고온 건조한 지중해성 기후가 나타난다. 또한 유럽은 지형, 토양 조건이 포도나무에 어울리는 환경 조건을 지니고 있다. 포도나무의 생산지인 유럽이 곧 와인의 핵심 소비지라서, 해당 단원을 읽는 동안에는 개발도상국가가 처한 불편한 진실에서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기 위한 필수 준비물을 소개한다. 바로 지도다. 인터넷 지도를 곁에 두고 책에 등장하는 지명의 위치를 꼼꼼하게 확인하기를 권한다. 그러다 보면 하나의 상품에 정말 많은 국가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길러지는 세계시민의 자질은, 아마도 이 책이 독자에게 바라는 궁극적인 목적이 아닐까 싶다.


최재희_서울 휘문고 교사, 『스타벅스 지리 여행』 저자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4년 2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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