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으로 보는 마음 1
마음이 아플까봐
올리버 제퍼스 글·그림 / 이승숙 옮김 / 33쪽 / 10,000원 / 아름다운사람들
우리가 몰랐을 때는 건드릴 수 없고 때로는 그 난폭함에 휘둘리는 것이 무의식이지만, 불편한 감정을 유발하는 무의식의 원인을 옛 기억에서 찾아내고 만나서 그것과 친해지며 차츰 조절해 가는 일은 가능하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감정을 주체적으로 다스리게 되면 맥없이 받아내기만 하느라 힘들었던 무의식의 상처로부터 훨씬 자유로워질 수 있다.
“사실, 남들이 놀라거나 막 기뻐하거나 할 때 남들처럼 같은 반응이 제겐 안 일어나요. 특히 슬픈 상황에 모두 눈시울이 붉어지는데 전 눈물이 안나요.”
올해부터 학교에서 담임을 맡으면서 학생들이 다가와 건네는 일들이 너무 힘들고 거기에 어떻게 대응해 줘야 할지 막막해서 학교 가는 것이 공포라고 하는 선생님이 나를 찾아왔다. 어느 때부터인지 자신이 너무 메마르다고 느껴오긴 했지만 그것이 그렇게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고, 사는 데 지장을 초래할 만한 일이 아니라 여겼다고 한다. 그녀의 얼굴에는 20대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의 생기 없음과 무기력의 상흔들이 묻어있어 안타까웠다.
“선생님이 되고 싶어 정말 열심히 공부했어요.”
“무엇이 그렇게 선생님이 되고 싶은 마음을 자극했을까요?”
“학교에서 공부를 잘했는데 시험 보고 진학 상담 때 문과에서 배치표상으로 갈 수 있는 최고 학교가 그래도 OO교대였어요.”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기보다 최고가 되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요?”
무던히도 속을 썩이는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에게 우악스럽게 대들어가며 삼남매를 키워내는 어머니 사이에서 막내로 자란 선생님은 그 굴레를 벗어나고 싶었다고 했다. 빌라 거지, 휴거(휴먼시아 거지) 등의 신조어를 만들어내서 주거 형태를 비하하는 아이들에게 들키지 않으려 기어이 먼 길을 돌아다니고 학교에서는 친구들과 거리를 두고 공부에만 집중하는 사이. 나름대로 성적으로 인정받으며 중심에 설 수 있었던 선생님은 오빠와 언니가 엄마와 아빠의 갈등 사이에서 힘들어할 때마다 감정 소모를 하지 말자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고 했다. 이 길만이 자신이 이 굴레에서 벗어날 길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아이들이 제게 상담을 요청하면 겁부터 나요. 뭐라고 말해줘야 할지, 그런데 그 이전에 상담 내용에 공감조차 가지 않는 거예요. ‘그냥 모른척해’ ‘잊어버려’라고 말해줬다가 문제가 커지고 이런 일이 몇 번 반복되다 보니 그 이후부터는 정말 겁부터 나요.”
영국의 유명 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올리버 제퍼스가 전하는 진한 여운과 감동의 그림책 『마음이 아플까봐』를 읽어보라고 권했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 찬 한 소녀 그리고 그 소녀의 곁을 언제나 지켜주는 할아버지. 소녀에게 할아버지는 세상과 소통하는 창과 같은 존재였다. 그런데 어느 날, 어떤 마음의 준비도 없이 소녀는 할아버지를 잃고 너무도 두려운 나머지 그만 마음을 떼 내어 유리병에다 넣고 만다. 마음을 유리병에 가두자 마음은 더 이상 아프지 않았지만 세상에 대한 어떤 호기심도, 열정도 사라져 버리고 시간이 흐르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녀는 바닷가에서 한 아이를 만나는데 예전에 소녀가 할아버지에게 물었던 것과 똑같은 질문을 받게 된다.
“코끼리는 왜 바다에서 수영을 못하나요?” 책을 읽은 독자라면 알 것이다. 소녀가 이 질문에 대답을 할 수 없었다는 것과 자신이 두려운 감정들을 저 밑 마음의 창고에 그동안 가두어 놓았다는 것을. 물론 책에서는 은유적으로 병에 넣었다고 표현했지만.
이렇게 가두어둔 감정은 생기를 잃게 된다. 살아있는 감정이 오롯이 마주할 것들을 지레 잘라내어 구겨서 넣어왔으니 어쩌랴. 그런데 문제는 여기가 끝이 아니라는 것이다. 무의식이 고이 그 안에서만 자리해 주면 좋으련만 이 녀석이 나도 모르게 의식 바깥으로 튀어 오르려 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어서 아무리 애를 써도 쉽지 않게 된다. 게다가 오래도록 제 주인에게서 외면당했던 감정이기 때문에 성질이 참 고약해져 있을 때가 있다. 이 책에서도 무의식으로 던져진 마음을 쉽게 꺼낼 수 없었다고 하는 표현은 함축된 의미를 고스란히 전달한다.
“살면서 만났어야 할 많은 감정들! 선생님이 마땅히 만져주고 위로해 주었어야 할 감정들이 이제 아이들을 통해 선생님을 찾아왔네요. 그 감정이 그동안 얼마나 제 주인에게 알아주기를 바라고 토닥토닥 도닥여지기를 바랐을까요.”
오래도록 방치된 무의식은 때로 본성의 나를 잃게 만들고 심지어 ‘나 누구지?’라고 하는 근본적 물음으로 자신을 혼란하게 만든다. 그렇게 피해 다녔던 물음이 종국에는 다시 내게 돌아온다는 것이다. 피했다고 영영 넘어갈 성질의 것이 아니란 뜻이다. 가끔 내가 사는 삶에서 무미건조한 감정으로 삶이 메마르다고 느끼는 순간을 맞거나 전에 없이 나를 불편하게 하는 감정들로 지금 여기를 또 도망치고 싶다면 그때가 바로 내 무의식을 외면하고 때론 어느 곳에 묻어두고 침묵으로 회피한 냉정한 나는 아니었는지 돌아볼 때임을 알자.
김영아 선생님은 치유심리학자이자 독서치유상담사로 부모와 직장인, 유치원, 초·중·고등학교 교육 현장에서 그림책을 활용한 상담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쓴 책으로는 『내 마음을 읽어주는 그림책』『우는 법을 잃어버린 당신에게』『그림책으로 아이 마음 읽어주기 엄마 마음 위로하기』 등이 있습니다.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24년 2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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