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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합리·초개인·초자율 세대

by 행복한독서

2000년생이 온다

임홍택 지음 / 304쪽 / 18,000원 / 십일프로(11%)


1997년 대학 1학년 때 인터넷이란 단어를 처음 접했다. 사회학과 교수가 미래에는 인터넷이 대세라며 이런저런 검색 과제를 냈는데 절반은 무슨 말인지를 못 알아들었다. 일상에서 사용할 일은 없었다. 필수교양으로 컴퓨터 관련 강의를 들었는데, 강사는 “인터넷의 ‘인’은 참을 인 자라고 생각하시는 게 맘 편해요”라고 말을 했을 정도다. 무엇을 누르면 한참 후에나 화면이 달라지곤 했다. 신기는 했지만, 몇 년 후의 세상 모습이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2000년 초, 제대를 하고 예전 친구들을 만나는 데 시간이 꽤나 걸렸다. 군대 가기 전 사용하던 수첩에는 삐삐 번호만이 적혀있었기 때문이다. 그 무렵, 나도 생애 첫 휴대전화를 장만했다. 이메일 계정이 생긴 것도 이때였다. 2000년대생들에게는 태어남과 동시에 노출된 것들이다. 그 전의 상태를 모르기에, 과도기 자체가 없었다.


1970년대 후반에 태어난 나 역시 이십 대일 때는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세대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어디까지나 이전에 비해서였다. 스스로를 드러내는 데 조금 더 당당했고 사회의 눈치를 조금 덜 보았을 뿐이다. 고정관념이 강한 선배 꼰대가 아무리 싫어도, 합리적이지 않은 조직의 규율에 화가 치밀어도 어디까지나 내 의견 정도를 제시하는 게 최대치였다. 용기가 없어서가 아니라, 연결을 유지하면서 살아가는 게 당연했기 때문이다. 공동체 정신까진 없었지만, 누구도 공동체를 부정하진 않았다.


고리타분한 표현이지만, 저들도 누군가의 부모일 거라면서 예의를 지켰다.

조직이 이러한 것에는 다 이유가 있을 거라면서 ‘우리’의 가치를 그래도 존중했다. 사람 얼굴 보고 살아가는 세상에서 지켜야 될 선이 있다고 믿었다. 2000년대생들에게는 ‘없는’ 선이다. 이건 무례함과 전혀 다른 맥락이다. 애초에 ‘없는’ 도리일 뿐이다.

그들은 세상에 미안한 게 전혀 없다. 이들은 ‘우리 아이 자존감 키우기’ 따위를 실천하는 부모 밑에서 자랐다. 자존감이라는 말에 자주 노출될 수밖에 없다는 건, 세상 돌아가는 이치가 사람 자존감을 땅바닥에 떨어트리는 형태로 이루어져 있음을 뜻한다. 즉 이들에게는 사회를 연대의 개념으로 이해할 경험이 전무하다.


『2000년생이 온다』는 본격적인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새로운 세대를 분석한다. 그들의 대표적인 특성인 초합리 초개인 초자율은 “이겨내거나 사라지거나” (184쪽) 하는 것이 삶의 반복이었던 평범한 개인들의 평범한 생존 전략이다. 물론 ‘초’이기에 누구는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부딪히는 일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특징의 배경을 이해하면, 요즈음 만연하는 ‘엠지세대 희화’가 혐오와 별반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이 세대 갈등의 변수가 된다면, 그건 두 패러다임이 교차된 현상일 뿐이다. 누가 윤리적인지 판단할 필요가 없다. 솔직히 부럽기도 하다. ‘받은 만큼만 일한다’ ‘내 몫은 정확히 요구한다’는 건 이전 세대 누구나 원했던 것 아니었던가.


마지막으로 이 책은 내용을 떠나 출판계에 신선한 신호를 보내고 있음을 강조하고 싶다. 전작에서 정산 문제로 곤욕을 치렀던 저자는 일종의 ‘디지털 인지’ 시스템을 스스로 구축했다. 나는 4937번 째로 인쇄된 책을 읽었다. 독자 입장에선 별 거 아닐 수 있지만 어마어마한 혁신이다. 이 효율성, 2000년대생의 대표적인 특징 아니었던가. 건투를 빈다.


오찬호_사회학자, 『민낯들』 저자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4년 2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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