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뭘 좋아해?
조 로링 피셔 글·그림 / 남은주 옮김 / 32쪽 / 15,000원 / 북뱅크
표지 속 다정하고 기분 좋은 교감이 이미 이야기의 결론을 노출하고 있지만 어떤 과정을 거쳐 결론에 닿을지는 짐작하지 않는 게 좋다. 집 안에서 창 너머 회색 도시를 내다보는 아이가 있다. 불과 3년 전을 생각하면 자연스럽고 익숙한 상황이다. 기억하는가? 팬데믹 광풍은 담 하나를 두고 안팎을 나누어 안전을 가름하며 살게 했다. 입을 가린 얼굴이 더 편안했고 마스크를 벗은 이를 보면 불안했다. 조 로링 피셔가 우려한 건 그 이후다. 외출이 자연스러워졌고 마스크도 벗어 던진 지금, 아이들은 혼란스럽다. 내면이 단단하다거나 회복력이 좋다거나 하는 걸 고민해야 할 때가 본격적으로 온 것이다. 팬데믹은 없었으나 소피와 비슷한 시기를 지나온 작가의 경험이 그런 고민을 구체화할 수 있었다.
소피는 집 안에 있어도 담요와 의자로 만든 작은 요새가 더 편안하다. 회색빛 늑대 옷을 입고 동굴 같은 공간에 있으면 더 힘이 난다. 방 여기저기에 늑대가 등장하는 책들도 보인다. 소피에게 늑대는 친구이자 지향이다. 학교 가는 날에도 늑대 옷을 입는다. 불안을 달래며 운동장 구석에 앉아 친구에게 말 걸 기회를 생각하는 사이 웃음거리가 되고 만다. 인간 아이들은 늑대를 몰라본다. 늑대야말로 가장 사회적인 동물이다. 개개인의 의견을 존중한다거나 다수결을 따르는 방식조차 늑대 무리가 더 잘한다. 동료를 돕거나 협력하거나 상처를 입었거나 노쇠한 늑대와 새끼 늑대를 함께 돌보는 일 역시 늑대가 더 낫다. 놀리는 친구들을 피해 소피는 도망칠 수밖에 없다. 상처 난 마음을 달래기에는 역시 담요 아래 요새가 딱이다. 저도 모르게 잠이 든다.
다치고 지친 마음을 꿈속 판타지로 해결하는 건 너무 편한 방식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느닷없는 꿈이 아닌 오래도록 알고 좋아하며 공감하던 존재와 일치하게 되는 체험이라면 충분히 납득된다. 그림을 보자. 소피 방 안을 스케치한 앞 면지에 필요한 단서가 다 있다. 면지를 살피지 않고 지나쳤다면 본문 속 어떤 순간은 수수께끼가 될지도 모르겠다. 중요한 건 꿈으로 해결하기 이전에 이미 소피 마음을 사로잡은 게 무엇이었는지 알아차리는 일이다. 안전한 방 안 요새에서 어느새 소피는 숲으로 들어가고 있다. 늑대 무리는 소피를 받아들이고 그런 늑대 가족을 지키기 위해 곰과 맞서는 일조차 어색하지 않다.
소피는 최상위 포식자가 주는 공포감과 파워가 아니어도 늑대에게서 배울만한 여러 가지를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깨어나도 여전히 혼자이지만 꿈을 통해 용기와 힘의 의미를 깨달은 소피는 학교가 두렵지 않다. 더 이상 늑대 옷을 입을 필요도 없다. 그렇다고 현실에서 용기는 아직 완전하지 않다. 다만 용기를 냈을 때의 따뜻한 기억이 동력이 되어줄 것이다. 여러 가지 재료를 활용해 콜라주를 주로 하던 작가는 기존 작업 방식을 디지털로 전환했다. 기기 안에서 질감과 톤을 다르게 한 여러 겹의 그림을 쌓고 잘라 붙여가며 소피의 세계를 완성했다. 콜라주로 새로운 무언가가 만들어지는 건 그림에만 해당하는 건 아니다. 곰도 껴안은 소피는 올빼미였던 친구도 단박에 알아본다.
김혜진_그림책보다연구소 대표, 『야금야금 그림책 잘 읽는 법』 저자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24년 2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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