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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관심에서 시작될 변화

작가가 들려주는 그림책 이야기 134

by 행복한독서

나는 요정이 아니에요

이지현 글·그림 / 40쪽 / 14,500원 / 사계절



누구나 꽃나무 위에 인형처럼 예쁜 어린이 요정들이 앉아있는 그림들을 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다양한 꽃들과 열매들, 나뭇가지들, 그 위에서 사랑스러운 모습을 한 요정들로 표현된 아이들을요. 아이를 키워보니 왜 그런 이미지들이 만들어졌는지 이해가 갔습니다. 얘도 사람일까? 어쩜 이렇게 작은 사람이 있을까? 보는 것만으로도 사랑스러웠습니다.

그리고 한쪽에는 그런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일을 하는 이미지들이 있었습니다. 이건 요정의 이미지처럼 없는 것을 만들어낸 판타지가 아니라 정말 일어나는 일들을 사진으로 남긴 것들이었습니다. 어떻게 현실이 더 말도 안 되고, 믿기 어려운 일들이 일어나는 것일까. 이런 생각들은 오랫동안 마음속을 맴돌았습니다.

그림1-나는 요정이 아니에요-메인.png ⓒ이지현, 사계절(『나는 요정이 아니에요』)

먹고 놀기만 해도 힘들어 낮잠을 자야 하는 시기의 아주 어린아이들이, 일하다 지쳐 일터에서 잠들어있는 모습, 체념한 듯한 표정으로 말 없이 묵묵히 일하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제 아이의 얼굴이 보였습니다. 마치 제 아이가 그런 일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왜 어떤 아이들은 요정으로 표현되는데, 어떤 아이들은 이렇게 고된 노동을 해야 하는 것일까? 답 없는 질문을 마음속으로 되뇌지만 말고 나도 무언가 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계속해 오던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림2-나는 요정이 아니에요_본문1.png

이 책이 얼핏 보면 예쁜 그림책으로 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예쁜 그림책이라 기대하고 책을 펼쳤는데 생각하지 못한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으면 했습니다. 그게 우리 일상에서도 일어나는 일이니까요. 예쁜 옷이라고 골랐는데 옷을 만든 과정을 들여다보면 마주하기 힘든 일들이 그 옷에 담겨있기도 하니까요. 예쁜 그림책의 첫인상으로 다가가고 싶었지만, 그렇다고 마냥 화려하고 예쁜 이미지는 아이들의 상황과 맞지 않는 것이었고, 너무 황량하거나 무거운 이미지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표현은 아이들의 지금 상황에 대한 작은 희망의 씨앗까지도 잘라버리는 기분이었거든요.


아이들을 어떤 식으로 표현하면 좋을까, 무엇보다 아이들의 표정이 어떨까도 고민이 되었습니다. 뉴스나 캠페인에서 보여지는 아이들의 모습 말고도 다른 모습이 더 알고 싶었지만 직접 그곳에 갈 수 없었기 때문에 자료를 많이 찾아야 했습니다. 힘들다고 울기도 하지만 묵묵히 고된 노동을 해내는 모습들을 보며 어떤 특정 단어나 표정으로 표현해 버리기에는 너무나 많은, 아이들의 여러 감정들을 생각했습니다.

그 오랜 시간 일을 하면서 어떤 생각을 할까. 어떤 마음으로 그 시간을 버텨내는 걸까.

그림2-나는 요정이 아니에요_본문2.png

그런 부분은 텍스트를 쓰는 데에도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동안은 글 없는 그림책의 형식으로 주로 이야기를 해왔지만, 이번에는 이미지 만으로는 전달하기 힘든 부분이 있었고, 텍스트를 통해 한 번 더 강조하고 싶은 부분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저는 그 아이들을 직접 만난 적이 없었습니다. 모르는 이야기들을 아는 체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많은 장면들에서 텍스트를 들어내야 했습니다.


나 하나가 관심을 가진다고 무엇이 변할까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주 작아 의미가 없어 보이는 작은 점들이 모여 큰 방향을 만들어가고는 합니다. 사실 국가적으로, 국제적으로 또 기업이 사회적 책임감을 가지고 움직일 때 큰 변화가 가능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국가와 기업은 우리의 관심에서 전혀 자유롭지 못합니다. 변화는 우리의 관심에서 시작할 것입니다. 우리의 관심과 작은 행동들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여기고 고개를 돌려버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한 번쯤이라도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알기 전과 후는 다를 테니까요.

그림2-나는 요정이 아니에요_본문3.png

우리는 어쩌면, 그리고 저 역시도 이런 아이들을 밤새 말끔하게 일을 끝내놓는 구둣방의 요정쯤으로 여기고 있던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렇지만 그 아이들은 얼굴과 손과 발이 만져지는, 숨을 쉬고, 기쁘고 슬프기도 한, 진짜 존재하는 아이들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이지현 작가는 『수영장』 『문』 『이상한 집』 『마지막 섬』을 쓰고 그렸습니다. 『수영장』으로 미국일러스트레이터협회 최고의 그림책상, 포르투갈 아마도라 국제만화축제 아동도서 부문 최우수 외국 일러스트레이터상을 수상했습니다.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24년 3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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