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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달가슴곰의 자유를 응원하며

by 행복한독서

빠삐용

김선배 글·그림 / 44쪽 / 16,800원 / 호랑이꿈



시골 동네에서는 경사스러운 날에 종종 가축을 잡았다. 돼지는 발버둥을 치며 발을 질질 끌었다. 소의 울음소리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커다란 눈망울에서 뚝뚝 눈물을 떨궜다. 닭은 소리 한 번 질러보지 못하고 죽고, 토끼는 껍질이 벗겨진 채로 원래의 모습을 가늠하기 어려웠다. 온갖 가축이 멱따는 소리를 내며 마지막을 맞이할 때쯤 사람들에게는 생기가 돌았다. 가축의 머리와 몸통을 시퍼렇게 간 칼로 능숙하게 분리했다. 온 동네에 피비린내가 났다.


어릴 때 본 광경은 오래 머리에 남았다. 결국 고기를 먹지 못하는 어린이로 성장했다. 멸치볶음을 보면 역지사지로 사람이 죽어 서로 엉긴 모습이 떠올랐다. 편식이 너무 심해 엄마는 늘 여러 가지 곡식을 방앗간에서 빻아 미숫가루로 먹였다. 함께 살던 가축들이 불시에 그렇게 죽임을 당하는 것을 보았을 때, 다음 차례는 나일 것 같아서 발발 떨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김선배 작가의 『빠삐용』을 만났다. 빠삐용은 사육 농장을 빠져나와 인간을 위협했던 반달가슴곰 이야기를 담았다. 두 마리의 반달가슴곰은 천둥번개를 동반한 많은 비로 인해 우리에서 벗어나게 된다. 사람들은 탈출한 곰에게 빠삐용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포수, 수색견, 추적, 사살, 포획반, 재난문자, 외출 자제’


그림3-빠삐용_본문.png


이 단어들은 대상에 따른 우리의 두려움을 증폭시킨다. 비슷한 뉴스가 몇 가지 떠오른다. “시민들은 공포에 떨고 있습니다”라는 글과 함께 두려움에 떨고 있는 한 마리 곰. 결국 사살되는 장면은 우리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한다. 우리가 떨고 있는 것인가? 곰이 떨고 있는 것인가? 이 책의 묘미는 여기 있다. 뉴스 속보를 건조하게 전달하기에 우리의 감각은 더욱 이미지에 붙들린다. 작가는 이미지 언어를 통해 주인공 ‘빠삐용’의 자유를 응원하도록 설득한다.


책방에서 한 손님과 고양이 중성화 수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실랑이를 한 적이 있다. 내가 만약 고양이라면 나의 성별을 그렇게 마음대로 쥐고 흔드는 것을 반대한다고 했다가 호되게 비난을 받았다. 수명이 줄어든다는 말에 짧게 살아도 그저 나로 살고 싶다고 말했다. 언성이 높아지는 대화 속에서 결론은 나지 않았다. 함께 사는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도 봐왔기에 그저 내가 잘 모르니 그런다고 얼버무렸다. 그러나 그들이 정답이라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우리에게 자유가 있듯이 지구에 살아있는 생명이라면 응당 자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 「빠삐용」은 앙리 샤리에르가 쓴 반자전적 소설을 기반으로 만든 영화이다. “이 자식들아, 나 여깄다!”라고 외치며 탈출하여 자유를 얻었기에 이 영화는 흥행하지 않았나 싶다. 반달가슴곰 빠삐용도 우리에게 이런 말을 하고 있겠지. 잡히지 말고, 잘 살아라.


고선영_악어책방 대표, 『감정도 디자인이 될까요?』 저자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24년 3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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