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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지나도 잊을 수 없는 ‘세월’

by 행복한독서

세월 : 1994-2014

문은아 글 / 박건웅 그림 / 80쪽 / 22,000원 / 노란상상



4월이 다가오면 늘 먹먹해집니다.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해에 6학년 아이들을 만나고 있었고, 2학기에 수학여행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이후 수많은 안전교육, 수학여행을 포함한 체험학습 관련 법안들이 쏟아져나왔습니다. 그렇게 10년이 지났습니다.

“선생님, 세월호 관련 콘텐츠를 만들어서 다른 선생님들이 쉽게 해볼 수 있게 하려고 하는데 도와주세요”라는 요청을 받곤 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먹먹해지는 마음에 거절했습니다. 그러다 5년 정도 지났을 때 용기를 내어 선생님들이 크게 준비하지 않아도 아이들과 이야기 나누면서 할 수 있는 활동을 몇 가지 만들어서 보급했습니다. ‘아… 나도 익숙해지는구나. 이제는 담담하게 말할 수 있나 보다’라는 생각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여전히 부담스럽습니다. 해마다 직접적인 영상을 보여주거나 관련 이야기를 꺼내기보다 관련 애니메이션이나 그림책을 찾습니다. 눈물이 날 것 같기도 하고, 정확하게 정보를 제공할 자신이 없기도 합니다. 더 좋은 자료는 없을까 고민하던 중 『세월 : 1994-2014』라는 다큐멘터리 그림책을 만났습니다. 특이하게 주인공이 ‘세월호’입니다. 사람이 아니라 ‘배’ 입장에서 담담하게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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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로 수명 연장을 한 배가 수많은 불길한 징조를 느끼면서 그날이 오기 전까지 어떻게 버텼는지를 글과 그림으로 반복해서 알려줍니다. 정확한 사실을 알지 못하는 아이들이 이 책을 만나서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몰입하는 표정이 상상이 됩니다. 그날이 오기 전까지의 이야기들은 행복한 미래를 위한 디딤돌이 될 거라는 믿음으로 책장을 넘기는 아이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림책은 아름다운 이야기로 시작하지 않더라도 행복함으로 마무리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그날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책장을 넘기면서 알게 됩니다. 그래도 희망을 놓칠 수는 없습니다. 세월호는 먼바다로 모험을 떠나거나 전쟁하러 간 게 아닙니다. 이번이 처음 떠나는 바닷길도 아닙니다. 여러 번 구조 사인을 보내기는 했지만, 인천과 제주 사이 바닷길을 주 3회 왕복한 베테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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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절반 정도 봤을 때 주인공인 ‘세월호’는 바닷속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참 많은 의문을 남긴 채 말입니다. 구조 요청도 했습니다. 심지어 구조를 하러 왔고요.

그런데 왜 선장과 선원들은 승객들을 남겨둔 채 가장 먼저 탈출했을까요?

안내 방송은 탈출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가만히 있으라고 했을까요?

왜 구하지 않은 걸까요?

승객 전원 구조라는 오보는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요?

그 당시에도 화가 많이 났지만 지금도 여전히 그렇습니다. 책에 담긴 내용을 보고 아이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요? 아이들의 반응과 말이 궁금해서 빨리 아이들에게 읽어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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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는 그렇게 바닷속으로 가라앉고 시간이 흐릅니다. 무려 1073일이 지난 후에 수면 위로 올라옵니다. 2014년 4월 16일에 가라앉고 2018년 5월 10일에 똑바로 세워집니다. 여전히 5명은 찾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2024년. 10년이라는 세월이 흐릅니다.


세월호는 제주로 가는 배입니다. 사람과 물건, 자동차 등을 목적지인 제주까지 운반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세월호도 그 안에 있었던 모든 것들도 아직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한 채 세월이 흘렀습니다. 책 뒷부분에는 세월호가 아무런 문제 없이 목적지인 제주에 도착했으면 하는 평화롭고 따듯한 장면이 나옵니다. 눈물이 날 것 같습니다. 어쩌면 당연히 그렇게 했어야 하는 부분에서 왜 눈물이 나는 걸까요? 아이들은 이 장면에서 어떤 감정을 느끼고 말을 할까요?


많은 부분이 여전히 풀리지 않은 진실로 남아있습니다. 세월호 자체가 증거입니다. 왜곡하고 은폐하려 했던 흔적들까지 모두 증거입니다. 다큐멘터리 영상은 종종 찾아봅니다. 그런데 다큐멘터리 그림책을 제대로 본 것은 처음입니다.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 교훈을 주기 위한 그림책에서 한 발 더 나가 진실을 마주할 용기를 주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여전히 다가오는 4월은 부담스럽습니다.

4월 16일이 다가오면 아이들과 이 책을 함께 보며 기억하고 추모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더불어 진실을 담담하게 담는 『세월 : 1994-2014』 같은 다큐멘터리 그림책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나승빈_광주 진남초 교사, 『다시 만난 수업놀이 : 디 에센셜』 저자


이 콘텐츠는 <월간아침독서> 2024년 4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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