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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무엇을 모으는 사람인가요?

by 행복한독서

나는 모으는 사람

안소민 글·그림 / 66쪽 / 19,000원 / 옥돌프레스



저는 ‘모으는 사람’입니다. 어렸을 때는 길에서 부러진 칫솔을 주워 온 적도 있다고 하니 아마도 제 유전자에는 모으는 습성이 내재해 있는 듯합니다. 지금도 부지런히 좋아하는 것을 모으고 있는 것을 보면 저는 이 책을 만들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을까요?

일상에서 떠오르는 단어들, 혹은 책을 읽다가 영화를 보다가 마음에 들어오는 문장을 여기저기 써두는 걸 좋아합니다. 이 책의 시작은 그중 어느 포스트잇에 써둔 ‘당신은 무엇을 모으는 사람인가요?’라는 문장이었습니다. 어떤 공간에 무엇을 두는지에 따라 그 공간의 용도가 달라지듯이, 누군가의 마음속에 무엇이 있는지 역시 그 사람만의 특별함을 만듭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담은 책을 만들고 싶었고, 그렇게 『나는 모으는 사람』이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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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나오는 다양한 물건과 에피소드에는 제 경험이 많이 담겨있습니다. 거의 모든 아이들이 그렇듯이 공룡 책을 좋아하는 어린이였고, 돌멩이도 조개껍질도 귀여운 양말과 문구도 모두 제 책상과 옷장, 서랍 속에 자리 잡은 물건들입니다.

등장하는 물건뿐만 아니라 에피소드에도 제 경험이 많이 반영되었는데요. 그중 하나가 주인공 아이가 자전거에 도전하는 장면입니다. 저는 자전거를 타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어른이 된 후까지 자전거를 가르쳐주려고 시도한 몇몇 친구들이 있었지만 모두 실패했지요.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자전거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전문가를 찾았고, 3시간여의 수업 끝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창 이 책을 만들던 즈음의 일이었고, 개인적으로 너무나 뿌듯한 경험이었기 때문에 이 도전과 성취에 대한 내용을 꼭 책에 담고 싶었습니다. 아이가 다양한 경험을 모으고 성장해 나가는 책의 흐름과도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했고요. 그렇게 주인공 아이가 자전거를 타다 넘어지는 장면, 또 나중에 친구들과 함께 바람을 맞으며 자전거를 타고 강변을 달리는 장면이 탄생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당신은 무엇을 모으는 사람인가요?’라는 문장에서 시작된 책이기 때문에 이 책의 결말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 문장으로 정해져 있었습니다. 또한 아이가 자잘한 물건을 모으는 것부터 시작해서 일상 속 경험들, 다양한 감정들을 모아 나가는 책의 중후반부까지도 비교적 순탄하게 진행했는데요. 이다음에 나와야 할 비우는 장면이 문제였습니다. 모으는 것뿐만 아니라 비우고 또 이를 통해 성장해 나가는 이야기를 담고 싶었는데, 그러다 보니 ‘비움’이라는 추상적인 내용을 그림책의 흐름을 깨지 않고 아이의 일상 속에서 어떻게 표현할지에 대한 고민이 많았습니다. 결국 고민 끝에 주인공 아이가 어둡고 답답한 커튼을 확 젖히고, 민들레 씨앗을 후 부는 모습으로 비워내는 장면을 은유적으로 표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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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재료를 정하는 과정에도 지난한 고민이 있었습니다. 제가 가장 많이 쓰는 재료인 아크릴 물감과 색연필, 수채화, 구아슈 등 다양한 재료들로 테스트 장면을 그려 보았는데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다양한 시도 끝에 한 번도 써보지 않은 재료인 오일파스텔로 그림을 그리기로 결정했습니다. 그 이유는 크레파스로 그린 것 같은 거친 질감과 선명한 색상이 주체적이고 단단한 내면을 가진 주인공 아이와 그 세계를 표현하는 데에 적합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림을 그리다 보니 생각보다 다루기에 까다로운 재료임을 알게 되어 시행착오를 조금 겪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결과가 마음에 들어 재료 선정에 시간을 들여 고민한 보람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모으는 사람』은 매일의 일상 속에서 내가 모으는 것들이 지금의 ‘나’를 이루고, 더 나아가 미래의 ‘나’를 만들어 나간다는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만들어온 책들도 당연히 저의 가치관과 생각을 반영하지만 이 책만큼 일상과 경험을 많이 투영한 책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더 애착이 가는 책이기도 합니다.

독자 여러분이 이 책을 읽고 ‘나는 무엇을 모으며 살아왔는지, 앞으로 무엇을 모으며 살아갈 것인지’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된다면 좋겠습니다. 이 세상 모두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들을 차곡차곡 모으며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안소민 작가는 그림책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로 1인 출판사 옥돌프레스를 운영합니다. 2020 볼로냐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 2020 커뮤니케이션 아트 북카테고리 쇼트리스트, 2019 골든 핀휠 영 일러스트레이터 50인에 선정되었습니다. 쓰고 그린 책으로 『삶은 달걀과 감자와 호박』 『너도 맞고, 나도 맞아!』 등이 있고 다양한 그림책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24년 4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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