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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공동체가 된 초록길도서관

by 행복한독서

시끄러워도 도서관입니다

박지현, 백미숙 지음 / 288쪽 / 18,000원 / 생각비행



서울시 은평구 역촌동 한 골목에 책 제목처럼 처음부터 ‘시끄러운 도서관’을 지향한 작은도서관인 초록길도서관이 있다. 『시끄러워도 도서관입니다』는 이렇게 지향점이 뚜렷한 초록길도서관의 12년 역사가 담긴 귀한 책으로 박지현 도서관장과 백미숙 동화작가가 같이 썼다. 책에는 도서관을 전혀 모르던 분들이 의기투합해 마을에 작은도서관을 만들어 내실 있게 운영한 이야기가 오롯이 담겼다. 책을 읽으며 오랜만에 가슴이 살짝 설레었다. 책은 사람과 마을에 애정을 가진, 추진력과 열정을 갖춘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만든 작은도서관이 어떻게 마을공동체의 중심이 되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변화시키는지, 그 과정에서 아이들과 이용자들이 얼마나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아름다운 추억을 쌓을 수 있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책을 보니 초록길도서관은 책이 있는 마을 사랑방이고, 책을 읽으면서 노는 아이들의 놀이터이고, 서로 배우고 가르치는 평생학습관이고, 민주적 시민을 길러내는 학교였다. 이처럼 초록길도서관 사례는 민간 작은도서관의 가장 이상적이고 바람직한 전범을 보여준다. 오래전에 내가 만들고 싶었던 작은도서관의 모습이 책에 있어 무척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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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며 25년 전 설레는 마음으로 작은도서관을 시작했던 일이 새삼스레 기억났다. 초록길도서관을 만든 이들처럼 필자도 작은도서관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도서관 개관을 준비해야 했기에 어려움이 많았다. 지금처럼 작은도서관에 대한 자료가 풍부한 상황이 아니었고 물어볼 만한 곳도 사람도 별로 없었다. 6개월 정도 준비하고 작은도서관을 겨우 개관했는데 초록길도서관은 처음 작은도서관을 만들자는 논의를 한 지 80일 만에 뚝딱 개관을 했으니 이분들의 추진력은 실로 놀랍다.


행정적인 지원 하나 없이 주민들이 스스로 만들고 운영하는 작은도서관을 12년 동안 꾸려왔으니 운영 주체들의 힘겨움이 결코 적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다행히도 박지현 관장은 책의 들어가는 글에서

“우리 동네 골목길에 작은도서관 만들기를 참 잘했다”

고 얘기한다. 초록길 덕분에 자신의 삶이 풍요로워졌다고 고백한다. 그러면 됐다. 마음이 놓인다. 지난 12년의 시간이 이분들의 몸과 마음을 갉아먹은 시간이 아니라 풍요로운 삶을 만든 아름답고 소중한 시간이었으니 말이다. 아마도 함께 마음 모으고 땀도 같이 흘린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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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사회학자 레이 올든버그는 『제3의 장소』에서 제1의 장소인 가정, 제2의 장소인 일터 혹은 학교에 이어 목적 없이 다양한 사람들이 어울리는 제3의 장소의 중요성을 언급한다. 레이 올든버그는 지역사회를 구축하는 기능을 하는 제3의 장소를 가진 사람이 못 가진 사람보다 삶의 만족도가 높다고 얘기한다. 작은도서관과 동네책방이 레이 올든버그가 언급한 제3의 장소에 가장 부합하는 공간이란 생각이 든다.


초록길도서관은 2012년에 주5일제 수업이 본격적으로 시행되자 매주 토요일에 놀이학교인 초록길도토리학교를 운영했다. 서울시교육청 혁신교육지원센터의 지원을 받아 돌봄교실도 3년이나 진행했다. 이 정도면 거의 대안학교 수준이다. 그들은 이런 시도를 마을교육이라고 설명한다. 학교 안의 교육을 마을과 공동체로 확대하며 교육의 주체를 변화시키는 게 마을교육이다.

삶의 공간이 곧 배움의 공간이 되는 것,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학부모와 이웃, 어린이와 청소년이 서로 배우는 것이 이들이 추구하는 마을교육이다.

덕분에 초록길 아이들은 즐거운 어린 시절을 보냈고 학부모들도 덩달아 행복했다.

이들은 정말 못 말리는 ‘마을 오지라퍼’들이다. 마을의 어려운 가정에 반찬을 만들어주는 반찬봉사모임을 8년이나 지속하고, 가족이 소비하고 남은 식재료나 반찬을 나누는 공유냉장고도 운영한다. 심지어 아이들과 함께 광화문까지 진출해 기후 정의 행진까지 한다. 이런 일들은 결코 혼자만의 의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어떤 일이든 의미 있는 일이라면 함께 나서주고 헌신하는 이들이 있어 겁 없이 벌일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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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동안 꾸준히 진행한 글쓰기 수업도 언급하지 않으면 섭섭하다. 이들은 수업만 한 게 아니라 여러 권의 책을 결과물로 펴냈다. 생활글을 담은 문집 2권, 동화책 5권, 시집 1권, 에세이집 2권이 그동안의 성과이다. 수업을 하는 곳은 많지만 이렇게 결과물을 온전히 내는 곳은 드물다. 이것이 초록길도서관의 저력일 듯싶다. 이렇게 초록길도서관의 글쓰기는 이웃과 관계 맺는 과정이고 스스로를 성찰하고 내면의 이야기를 꺼내는 과정이었다. 이들은 모든 과정이 함께여서 가능했다고 말한다.


책에도 잘 나와있지만 매월 월세를 내야 하는 초록길도서관이 외부 지원 없이 12년을 이어온 과정이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지속가능한 운영이 초록길도서관의 큰 고민일 텐데 이 작은 도서관의 소중함을 아는 이들이 많으니 방법을 찾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이 책을 사서 읽고 널리 공유하는 것도 초록길도서관을 응원하는 한 방법이다.

박지현 관장의 말처럼 초록길도서관의 이야기는 기록할 가치가 충분히 있다. 책을 낸 것을 칭찬한다. 덕분에 귀한 도서관을 알게 되었다. 신문이 나오면 초록길도서관을 찾아가야겠다. 마음이 설렌다.


한상수_㈔행복한아침독서 대표, 『나는 책나무를 심는다』 저자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4년 4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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