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인이 사랑하는 책방 - ‘미스터버티고’
나는 좋아하는 공간과 그렇지 않은 공간의 판단 기준이 명확한 편이다. 공간의 완성도와 무관하게 공간을 가꾸는 사람이 보이는 곳을 좋아한다. 공간을 가꾸는 사람에 대해 아무것도 알 수 없는 곳은 마치 생산자 표시가 없는 상품 같아서 아무래도 즐겨 찾지 않게 된다. ‘미스터버티고’ 책방을 좋아하는 이유도 이곳 곳곳에 책방 주인의 흔적이 진하게 남아있기 때문이다. 서가에 꽂혀있는 책, 매대에 놓인 책의 배치, 책의 분류, 책에 대한 소개 글, 책방 이용 규칙 같은 것을 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책방 주인의 성격, 인격 같은 것을 연상하게 되는 묘한 매력이 있다. 그리고 그가 타겟팅한 고객이 두루뭉술한 ‘대중’이 아니라 정확하게 ‘나’라는 인상을 받는다. 그 정도로 책방 주인의 셀렉션이 좋았다.
미스터버티고는 한적한 주택가 골목에서 3년, 대형 쇼핑몰에서 5년, 그리고 지금은 다시 주택가로 공간을 이전해 1년 넘게 운영 중이다. 신현훈 책방 대표는 “대책 없이 부족하지만 어처구니없이 치열한 책방 미스터버티고 생존 분투기”라는 부제를 단 그의 책 『버티고 있습니다』에서 “뭐에 씌워서 책방을 쇼핑몰로 이전했는지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며 “개성 강한 문학 전문 동네책방에서 쇼핑몰 한구석에 있는 그저 그런 조그만 서점이 되었”다고 한탄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대형 쇼핑몰에 있던 책방을 좋아했다. (한적한 주택가 골목길에 있는 미스터버티고에 가봤다면 그 또한 좋아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또한 책방 주인은 마이너한 정서를 갖고 있다며 “고객들이 많이 찾는다고 위즈덤하우스, 김영사, 시공사, 비즈니스북스, RHK 등 밝은 기운 뿜뿜 내뿜는 출판사 책을 찔끔찔끔 갖다 놓고 팔고 있으니 잘될 턱이 있겠나?”라고 썼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책방을 최애로 꼽는 나는 위즈덤하우스에서 일하는 편집자이다.
회사가 일산에 있었을 때는 벨라시타 쇼핑몰에서 작가 미팅을 자주 가졌는데, 미팅을 마친 뒤 2층에 있는 미스터버티고에 들르는 게 루틴이었다. 그곳의 책들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묘하게 힐링 되는 기분을 느끼곤 했는데, 눈에 거슬리거나 좋아하지 않는 책들이 거의 없고 대부분 내가 찾는 책들로 공간이 채워져 있어서 그저 편하고 좋았다는 것을 시간차를 두고 알게 되었다. 창문 사이사이 책상이 놓여있고, 그 뒤로 좋아하는 책들로 가득한 서가가 길게 세워져 있는 이 공간이 좋아서, 당시 책방에서 구인 중이던 주말 아르바이트에 지원하는 메일을 수십 번 썼다 지웠다 한 적도 있다. 어떤 사람과 오래도록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면 그가 좋아하는 행동을 하기보다 싫어하는 행동을 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는 말이 있는데, 이곳이 딱 그랬다. 좋아하는 책도 많지만 싫어하는 책도 많은 책방보다는, 좋아하는 책이 상대적으로 적어도 싫어하는 책이 적은 책방이 나에게 잘 맞는다는 것을 당시 미스터버티고를 드나들며 알게 되었다.
이후 회사가 합정으로 이전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이곳에는 발길이 뜸해졌다. 회사 근처에도 동네책방이 많이 있지만 아쉽게도 내가 찾는 책들로 채워져 있는 편안한 공간에 대한 채워지지 않는 갈증을 어찌할 수 없었다. 그래서 미스터버티고 책방을 대체할 만한 공간을 찾아본 적도 있지만, 아직까지는 이렇다 할 만한 소득은 없다. 동네책방 천 개가 있다는 건, 천 명의 주인이 천 권의 각기 다른 책을 골라 보기 좋게 진열해 놓고 사람들의 손길을 기다린다는 의미인데, 쉽게 찾지 못하는 게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가 쓴 책에 따르면, 그는 “읽는 것 자체가 즐거운 책”을 팔고 싶다고 한다. 즉, 읽어서 뭔가를 얻는 책보다 텍스트 자체를 즐길 수 있는 책(예를 들면 소설책, 인문서, 과학책이나 역사책처럼 뭔가에 활용하기 위해 만든 것이 아니라 책 자체를 즐길 수 있는 책), 읽는다는 행위 자체에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책을 좋아하고 그런 책을 팔고 싶다고 밝힌다. 본인의 취향이 이쪽이라고 생각한다면 망설이지 말고 미스터버티고를 방문해 보자.
어제 오랜만에 다시 주택가에 자리 잡은 미스터버티고를 찾았다. 『영혼의 자서전』에 “행복은 자기 집 마당에서 발견되는 새이다”라는 문장이 있는데, 행복은 정말 멀리 있지 않은가 보다. 오랜만에 찾은 미스터버티고에서의 짧은 시간이 진짜 행복했기 때문이다. 벨라시타 쇼핑몰에 있을 때와 공간은 사뭇 달랐지만, 흐르는 공기는 신기할 정도로 같았다. 한쪽에는 책장이 한쪽에는 초록색 조명이 놓인 책상이 쪼르륵 늘어서 있는 모습은 흡사 작은 도서관과 같았다. 책방 주인이 쓴 책에 “가능하면 내가 좋아하는 책만 구비해 놓고 내가 좋아하는 책을 좋아해 주는 사람들한테 팔고 싶다”는 문장이 있는데, 그런 마음의 흔적도 여전히 남아있는 듯 보여 기분이 꽤 좋았다. 어떤 일이든 본질적인 요소에 집중하고 두려움 없이 덜어내고 싶은데 잘 안 되는 나로서는, 변함없이 본질에 집중하는 누군가를 보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행복과의 거리는 우리 집과 미스터버티고 책방 사이만큼이다.
위치 :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호수로446번길 73-8 1층
운영 시간 : 화~일 12시~19시(월요일 휴무)
인스타그램 : @mr.vertigo2015
김민정_위즈덤하우스 편집자
-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4년 4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