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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독서 Sep 09. 2024

호랑이가 ‘어흥’ 하던 시절, 또드랑 할매 이야기

또드랑 할매와 호랑이

오호선 글 / 이명애 그림 / 44쪽 / 16,000원 / 여유당



돌돌 말린 오래된 두루마리에서 “또드랑 또드랑 또드랑” 소리글이 새어 나온다. 무슨 이야기를 담고 있는 걸까? 하얀 머리를 곱게 빗어 쪽진 할머니가 맑고 경쾌한 소리를 내며 “또드랑 또드랑” 다듬이질에 열중하고 있다. 


“옛날에 옛날에 산골짜기 외딴집에 또드랑 할매가 또드랑 또드랑 다듬이질을 하는데, 무서운 호랑이가 할매를 잡아먹으려고 어슬렁어슬렁 내려왔어.” 


돌돌 말려있던 두루마리가 활짝 열리자 깊은 산중 조그만 초가집 위로 커다란 검은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어흥” 

호랑이의 커다란 소리글이 흥미진진 오싹오싹한 이야기판이 시작되었음을 보여준다. 또드랑 할매는 방 안까지 자신을 잡아먹으러 들어온 호랑이에게 죽기 전 마지막 소원으로 

“노랑 저고리에 빨강 치마를 예쁘게 지어 입고서 예쁘게 죽고 싶구나”

라며 소원을 들어주면 호랑이 밥이 되어도 좋다고 말한다. 그렇게 꾀를 내어 시간을 번 할머니는 평소에 늘 써왔던 반짇고리와 다듬이질 물건들로 ‘또드랑 할매 인형’을 만든다. 할머니는 분홍 실뭉치, 하얀 실, 까만 구슬로 얼굴을 만들고, 다듬잇돌과 방망이로 몸과 팔을 만들어서 노랑 저고리에 빨강 치마를 입히고 

“날 좀 도와주렴” 

부탁하며 대신 인형을 방 한쪽에 앉혀놓는다. 벽장에 숨어서 기회를 보던 할머니는 결국 호랑이를 물리치게 되는데, 어떻게 물리치고 어떤 결말을 맞게 되는지는 책에서 꼭 확인하길 바란다. 이제 호랑이가 가고 없는 산골짜기에는 밤마다 “또드랑 또드랑 또드랑” 다듬이질 소리글이 멀리멀리 울려 퍼지며 두루마리가 돌돌 말리면서 이야기판이 마쳤음을 보여준다.

『또드랑 할매와 호랑이』는 할머니가 아이에게 들려주는 액자형 이야기로, 두루마리 속 이야기는 빛바랜 노란 바탕에 또드랑 할매와 사물들은 본연의 색으로, 해학적으로 그려진 호랑이는 흑백의 굵은 선으로 그려져 뚜렷한 대비를 이룬다. 그림책 하나로 친근한 민화와 현대적 만화를 동시에 보는 듯하다. 두루마리 바깥에서 말풍선으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할머니와 아이는 흑백으로 표현하여 이야기 속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담았다. 


옛이야기와 말놀이 전도사인 오호선 작가는 『한국구비문학대계』에 실린 「꾀로 호랑이를 잡은 공양주」에서 이야기의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작가는 어릴 적 들었던 할머니의 다듬이질 소리를 떠올리며 『또드랑 할매와 호랑이』를 쓰게 되었는데, 「팥죽 할멈과 호랑이」의 형식으로 이야기를 창작했다. 그림작가 이명애는 세련되고 해학적인 그림으로 부드러우면서도 당찬 또드랑 할매와 매력적인 호랑이를 탄생시켰다. 친근하면서도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옛이야기 창작 그림책 『또드랑 할매와 호랑이』는 입에서 입으로, 세대에서 세대로 전해질 또 하나의 우리네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오현아_그림책작가, 『풋감으로 쓴 시』 저자


-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24년 9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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