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에 관한 오해
이소영 지음 / 336쪽 / 22,000원 / 위즈덤하우스
책방에서 ‘날마다 식물 드로잉’ 모임을 하고 있습니다. 100일 동안 매일 식물을 그려서 온라인으로 인증을 하는 모임이지요. 처음엔 참가자를 열 명 이내로 소박하게 모아보려고 했어요. 얼마나 모일까 싶었거든요. 그런데 뜻밖의 일이 벌어졌습니다. SNS에 모집 공고를 올리자마자 ‘좋아요’ 수가 치솟더니 ‘참여하고 싶다’는 댓글이 주르르 달리는 게 아니겠어요. 실제로 신청서가 서른 개 가까이 빠르게 쌓였고 서둘러 ‘모집 마감’ 공지를 해야 했어요. 사람들이 식물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식물에 얼마나 관심을 갖고 있는지 실감하는 순간이었답니다.
이토록 식물을 좋아하는 만큼 우리는 식물을 제대로 알고 있을까요? 식물세밀화가로 유명한 이소영 작가는 ‘식물을 기록해 온 지난 16년간 식물에 관한 크고 작은 오해와 편견에 맞닥뜨려왔다’고 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식물은 연약하고 수동적이라는 생각’이고요. 또 ‘콘크리트 틈새의 제비꽃이나 민들레를 불쌍히 여기는 것’도 식물을 잘못 보고 있다는 거죠. 이 말에 혹시 ‘이거 내 이야기인데…’ 하며 뜨끔 하셨나요? 그렇다면 이소영 작가의 『식물에 관한 오해』를 함께 읽어보시죠.
책은 크게 네 가지 챕터로 구성돼 있습니다. ‘식물에 관한 오해’ ‘식물을 바로 바라보기’ ‘식물의 힘’ ‘식물과 함께하는 생활’ 이렇게요. 면면을 보면, 우리 식탁에 올라오는 당근과 벼 같은 작물부터 집 안에서 기르는 금전수나 셀로움필로덴드론 같은 반려 식물, 라일락, 작약, 꽃양배추 같은 정원 식물 그리고 제비꽃과 닭의장풀 같은 야생 식물까지 망라합니다. 무려 마흔아홉 가지 식물을 다룹니다. 식물의 탄생 비화는 물론 식물 이름의 유래와 의미, 역사와 문화 속의 식물 이야기가 한데 어우러지니 무척 흥미롭습니다.
특히 ‘당근이 원래 보라색에 가까웠다’는 내용은 식물 좀 안다는 저에게도 새로운 이야기라 눈이 번쩍 뜨였답니다. ‘인류가 당근을 재배한 초기 기록엔 당근이 노란색, 보라색이었는데, 네덜란드에서 오렌지가문을 기리기 위해 주황색 품종을 활발히 육성’하면서 지금의 주황색 당근을 먹게 되었다는 거예요! 보라색 당근이라니…, 상상이 되시나요?
‘늘 먹는 식물에 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는가’라는 작가의 질문에, 그동안 저도 보기에 좋은 식물만 편애해 왔던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작가의 말처럼 “먹는 걸 좋아하는 이상, 유튜브 먹방을 보고, 맛집을 찾아가는” 우리는 지금도 식물을 쫓고 있고 좇고 있습니다. 식물에 관심이 없다는 사람일지라도 우리의 삶과 식물은 떼려야 뗄 수가 없습니다.
식물의 놀라운 생존 능력을 다룬 ‘식물의 힘’ 챕터는 ‘식물이 연약하다’는 편견에 도전합니다. 영하의 추위에도 스스로 열을 내서 눈을 녹이고 꽃을 피우는 복수초 이야기, 고약한 냄새나 독성 물질로 스스로를 지키는 식물 이야기는 식물이 얼마나 주도적이고 적극적인 존재인지 보여줍니다. 심지어 식물이 스스로 소리를 낸다니요! 요즘 ‘자연의 소리’에 푹 빠져있는 저에게 귀가 쫑긋해지는 이야기입니다. 식물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미세한 소리를 낸다는 것이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는 건데요. 인간은 감지할 수 없는 미세한 소리지만 생쥐나 박쥐 같은 동물은 들을 수 있는 소리라고 해요(이 대목에서 식물이 ‘싫어’ ‘힘들어’ ‘도와줘’ 라고 소리 내는 상상을 해보았답니다). “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내가 듣지 못한다고 해서 소리를 내지 않는 것이 아니다”는 작가의 말이 무게 있게 다가옵니다.
‘인간이 식물에게 이용당하고 있다’는 도발적인 내용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식물이 사람에게 먹혀서, 사람의 몸이나 신발에 붙어서 번식을 하는 건, 식물이 인간을 매개 동물로 이용하는 것일지 모른다는 발상입니다. “우리가 전적으로 식물의 향기와 약효, 아름다움을 이용한다고 생각하지만 식물은 반대로 자신의 효용성을 이용하는 동물의 이동력을 이용해 살아왔다”니, 뒤통수를 한 대 세게 얻어맞은 느낌입니다.
식물은 강한 바람에도 굴하지 않고 오히려 스스로를 더 단단하게 키운다는 내용도 곱씹어 봅니다. ‘바람이 덜 부는 울창한 숲에 사는 식물보다 너른 들판에서 홀로 바람을 견뎌온 식물이 바람에 더 강한 저항력을 갖고 있다’는 건데요, 기울어질지언정 꺾이지 않는 식물의 유연함을 생각하면 “강한 자연의 생명력과 인내심은 우리 인간에게 너무 과분하다는 생각이 든다”는 작가의 말에 백번 공감을 하게 됩니다.
식물에 대한 다양한 지식도 좋고 작가가 직접 관찰하고 그린 식물 그림도 아름답지만 이 책에서 가장 빛이 나는 건 식물을 대하는 작가의 태도가 아닌가 싶습니다. 식물에 대한 오해를 풀고 싶은 의지, 식물을 바로 바라보자는 외침은 식물을 ‘지구에서 인간과 더불어 살아가는 소중한 생명체로서 존중하고 아끼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일 테니까요. 식테크라는 이름으로 식물을 그저 돈벌이 수단으로 여기거나 희귀한 식물이나 많은 식물을 소유하려는 탐욕스러운 마음에 작가는 거침없이 옐로우 카드를 날립니다. “키보드로 지구에게 미안하다고 쓰는 걱정만큼, 쏟아낸 말들에 버금가는 행동을 하고 있을까. 말과 행동이 같지 않다면, 우리가 어떤 기념일마다 지구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은 자기만족일 뿐”이라며, 말뿐인 식물 사랑에 일침을 놓지요. 식물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커진 만큼, 내 방의 식물뿐만이 아니라 더 넓은 숲의 식물종을 지키려는 마음도 함께 자라나기를 작가는 바라고 있습니다.
“식물에게 행복이란 무엇일까” 작가는 식물을 관찰하며 이런 질문을 던진다고 합니다. 지금 이 순간 집에서든 공원에서든 숲에서든, 내 곁에 있는 식물과 눈을 맞추며 이런 질문을 되뇌어보는 것이 식물에 관한 오해를 풀고 진정한 식물 사랑에 다가가는 첫걸음이 되지 않을까요?
김혜정_책방 꽃피는책 대표
-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4년 9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