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멋져 보이는 것들의 사회학
오찬호 지음 / 336쪽 / 17,500원 / 북트리거
“인류는 진보했을까?” 학창 시절, 선배와 짧게 논쟁을 벌인 적이 있다. 나는 인류가 진보했다는 쪽이었고, 선배는 그 반대였다. 나는 인류가 이룬 발전과 성취를 강조했지만, 선배는 그 이면에 감춰진 추악한 현실을 꼬집었다. 짧은 논쟁은 내내 평행선을 달렸다. 『세상 멋져 보이는 것들의 사회학』의 작가는 그 선배와 닮았다. 사람들은 진보의 이야기에 익숙하다. 과학기술이 발전하고 경제가 성장하며 인류가 더 풍요로워졌다는 이야기다. 오늘날 평범한 사람들은 수백 년 전 왕후장상에게나 가능했던 산해진미를 맛보고 장수를 누린다. 한 해 전 세계에서 버려지는 음식물 비용이 1,350조 원에 달한다. 풍요로운 현대를 부정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많은 사람이 여전히 헐벗고 굶주린다. 전 세계에서 15억 명이 제대로 된 화장실을 이용하지 못한다. 전 세계 인구의 19퍼센트에 해당한다.
『세상 멋져 보이는 것들의 사회학』은 사회학자의 날카로운 시선으로 열다섯 가지 사물과 현상의 뿌리를 더듬고 핵심을 되묻는다. 그래서 현상 이면에 감춰진 시스템과 구조를 돌아보게 한다. 이를테면 친환경 물품을 파는 장터 행사에 자원봉사를 하러 가서, 끊임없이 옷 소비를 부추기는 자본주의 시스템을 이야기한다. 자본주의 시스템을 성찰하지 않고서 환경은 개선될 수 없다고 항변한다. 환경 파괴는 욕망을 땔감으로 굴러가는 자본주의 시스템과 떼려야 뗄 수 없다. 작가는 분명 진실을 말하는데, 주변 사람들은 이상한 소릴 한다는 투로 반응한다.
대체로 우리는 현상의 겉만 본다. 익숙한 세계에 젖어 익숙한 생각을 한다. 예를 들어 ‘기술=발전’으로 무작정 등치시키는 게으른 사고방식에 젖어 있다. 현상의 뿌리를 붙들고 흔들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일이 어떤 독자에게는 고역일 수 있다.
“익숙함은 인식의 장애다.” 체코 철학자 카렐 코지크가 한 말이다. 한 번 만들어진 물건, 훨씬 쾌적해진 생활, 더욱 편리해진 세상 등 익숙한 것에 길든 탓에 인류는 멸종 직전까지 간 적이 있다. 이 책에는 에어컨 냉매제인 CFC(염화불화탄소) 사례가 나온다. CFC는 오존층을 파괴한다. 오존층이 파괴되면 지구상 생물은 자외선에 그대로 노출된다. 모자나 양산 없이 땡볕에 몇 시간 서있으면 살갗이 금방 벌게진다. 자외선은 그만큼 무섭다. 오존층 파괴로 인류는 멸망할 수도 있었다. 이 위험성을 증명한 때가 1973년이다. 그런데 CFC의 생산과 사용을 금지한 건 2010년이다. ‘이러다 다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도 37년이 걸렸다. 그게 인류다.
익숙함이 인식의 장애라면, 불편함은 인식의 확장이다. 불편한 목소리 덕분에 지금 우리가 누리는 혜택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시키는 대로만 일하고 주는 대로만 받았다면, 세상은 여전히 어두웠을 것이다. 아동 노동이 횡행하고 노동자가 일하다 죽어 나가고 주 7일 근무가 일상인 세상이 됐을지 모른다. 주머니 속 송곳처럼 삐죽 나온 누군가 목소리를 높이고 그 목소리가 함성이 돼서 세상은 조금씩 바뀌었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을 누군가 당연하게 보지 않았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이 책의 시선이 불편하지만 소중한 이유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책장을 덮으면서 이성복 시인의 「그날」이 문득 떠올랐다. 이 책이 당신을 아프게 찌르길 바란다. 아픔을 느끼지 못하면 병을 치료하기 어렵다.
오승현_작가, 『인공 지능 판사는 공정할까?』 저자
-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4년 9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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