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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독서 Oct 02. 2024

새들이 겪는 비극과 연대, 희망의 이야기

점과 선과 새

조오 글·그림 / 56쪽 / 16,000원 / 창비



유리창 아래 떨어져 있는 새를 본 적 있나요? ‘나는 한 번도 본 적 없는데?’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면 우리나라에서만 연간 800만 마리 정도의 새가 유리창이나 인공물에 부딪혀 죽는다고 하니 놀랍지요. 여러 활동가와 시민들의 노력 덕분에 점점 조류 친화적인 건물이나 조류 충돌 저감 조치를 한 유리창들이 늘고 있지만 아직은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한 문제입니다.


『점과 선과 새』는 도시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야생조류 유리창 충돌 문제를 다룬 그림책입니다. 이 책에 사람은 등장하지 않지만 새들의 입장에서 그들이 겪는 매일의 비극, 슬픔, 연대 그리고 희망을 이야기합니다. 그 과정에서 인간인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생각해 볼 수 있기를 바라면서요.


열 살 즈음의 일이었습니다. 하루는 학교에 있는 커다란 창문 아래에서 작은 새 한 마리를 보았습니다. 천천히 다가갔지만 새는 미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주변에 있던 몇몇 아이들은 흘끔 보고는 금방 흥미를 잃었는지 제 할 일을 하러 떠났습니다. 저는 모두가 떠나고 난 뒤 새를 조심스럽게 들어 주머니에 넣었습니다. 마치 깊은 잠에 빠져있는 듯한 새는 가볍고 보드라웠으며 따뜻하지도 차갑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방과 후, 집 근처 동산에 새의 무덤을 만들어주었습니다. 봉긋한 흙더미를 한참 도닥이다 새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집에 돌아갔습니다. 어른들에겐 함부로 죽은 동물을 만지면 안 된다고 꾸중을 들었지만 제 마음속에 무언가 중요한 이야기가 싹튼 순간이었습니다. (이 일화는 저의 어린 시절 경험일 뿐, 허가 없이 동물을 땅에 묻으면 안 됩니다. 동물 사체 발견 시 각 지자체의 방침을 따라주세요.)


그래서였을까요? 그 기억은 어른이 되어서도 종종 떠오르곤 했습니다. 그리고 그림책작가를 꿈꾸면서부터는 그때 만난 새의 이야기를 언젠가는 책에 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생명다양성재단이 주관한 ‘야생조류 유리창 충돌’에 관한 온라인 강연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저에게 그것은 매우 낯선 환경문제였습니다. 하지만 강연을 다 듣고 나니 오랫동안 비어있던 마지막 한 조각 퍼즐이 맞춰진 것 같았습니다.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이 책을 만들기 위해 그때 그 새를 만난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 소재를 작업으로 풀어내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습니다. 단순히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거나 정보를 주는 책이 아닌, 그림책만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새를 살리기 위한 방안으로 시행되는 충돌 저감 조치를 작품 속에 잘 녹여내는 것이었습니다. 이른바 ‘5×10 규칙’으로, 새들이 투명한 유리를 장애물로 인식할 수 있도록 상하 간격 5센티미터 좌우 간격 10센티미터 이내의 문양을 창문에 작업하는 것입니다. 흔히 볼 수 있는 방음벽의 점들처럼요. 다만 그동안 빛과 그림자, 공간의 연출을 주로 활용하여 그림을 그려왔기 때문에 점과 선으로 아름다운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은 제게 새로운 도전이었습니다.

수많은 시도를 해보았지만 마음에 드는 그림은 쉽게 나오지 않았습니다. 멋진 이미지를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그림은 점점 화려해지기만 했습니다. 여러 번의 좌절 끝에 정말 내가 이 작품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다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를 구하기 위해 필요한 건 화려한 문양이 아닌 그저 점과 선이었는데 그걸 놓치고 있었다는 것을요. 그렇게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게 되었고, 한 땀 한 땀 점과 선을 채워 넣고 나서야 끝내 원하는 장면들을 하나씩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클라이맥스 장면은 단순해 보이는 결과물과는 달리 3일 밤낮을 꼬박 수정에만 썼을 정도로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갔던 장면입니다. 작업은 늘 이렇게 끝이 보이지 않는 삽질과 함께 완성되는 것 같습니다.

이번에 처음으로 환경에 대한 책을 작업하면서 저를 괴롭게 했던 게 있습니다. 제가 이 문제를 위해 현장에서 직접 뛰어본 경험이 매우 적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동안 방관자처럼 숨어있던 내가 이것을 말할 자격이 있는 걸까 하고요. 하지만 작업을 하면서 깨달았습니다. 사람들마다 각기 다른 목소리를 가진 것처럼 어떤 문제를 마주했을 때 각자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 다르다는 것을요. 누군가는 현장에서 뛰면서 또 누군가는 사람들을 교육하면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애쓰는 것처럼, 저는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방식으로 ‘야생조류 유리창 충돌’을 이야기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내가 할 수 있는 일만 하자는 그런 단편적인 이야기는 아닙니다. 인간이 끊어버린 자연의 순환고리에 모두가 몸살을 앓는 절망적인 시대, 저는 각기 다른 목소리가 공명할 때 일으킬 기적을 믿고 싶습니다. 책 속에서 새들의 각기 다른 점과 선이 모여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냈던 것처럼요.

이 그림책이 또 다른 누군가의 목소리를 이끌어낼 수 있다면 정말 멋질 거예요.



조오 작가는 『나의 구석』 『나의 그늘』을 쓰고 그렸습니다. 첫 그림책이 2024년 미국 아동청소년도서협의회(USBBY)에서 우수 국제 도서로, 2024년 미국 『커커스 리뷰』에서 올해의 그림책으로 선정되었습니다.


-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24년 10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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