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트비히와 코뿔소
노에미 슈나이더 글 / 골든 코스모스 그림 / 이명아 옮김 / 40쪽 / 17,000원 / 여유당
아들은 중1이 될 때까지 매일 밤 엄마에게 책을 읽어달라고 했다. 책을 좋아했다기보다는, 일하느라 바쁘고 피곤한 엄마를 독차지할 수 있는 시간이 그때뿐이라는 걸 잘 알았기 때문일 테다. 나 역시 아이 옆에 누워 책을 읽으면서 시간과 공간, 서로의 마음과 생각을 공유하는, 짧게는 5분에서 길게는 한 시간에 이르는 둘만의 루틴을 지키기 위해 무척 애를 썼다.
그림책부터 동화책, 만화, 시리즈물, 고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책을 읽으며 좋은 추억을 쌓았지만 위기도 있었다. 언제부턴가 죽음이나 시간의 개념에 대한 질문이 이어지더니 결국 ‘자신이 죽은 후에도 시간은 계속 흐르는 것’이냐며 괴로워하기 시작한 것이다.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어야 하는데, 그래서 자기가 죽으면 시간도 멈춰야 하는데 그게 아닌 것 같다면서 말이다. 내 생각에 아이의 말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했다. 하지만 존재에 관한 이 대화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도무지 갈피를 잡기 어려웠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상대의 믿음을 다른 관점에서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어떻게 증명하고 설득할 수 있을까. 괜히 아이 걱정만 하고 머리가 지끈거렸던 날들.
『루트비히와 코뿔소』를 만났을 때, 아이와 밤마다 ‘시간’과 ‘존재’에 대해 논쟁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맥락은 조금 다르더라도 그때 우리에게 이 그림책이 있었다면 불안과 걱정보다는 유쾌하고 긍정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었을 것 같아서 말이다. 『루트비히와 코뿔소』는 ‘눈에 보이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가’라는 철학적 질문을 어린 루트비히와 아빠의 다정한 잠자리 대화로 풀어낸 철학 그림책이다. 실제로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이 그의 스승 버트런드 러셀과 벌인 ‘코뿔소 논쟁’을 소재로 삼았지만, ‘철학’이라는 수식어를 빼더라도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한 매력이 있다.
세 가지 별색만으로 인쇄해 일곱 가지 색을 만들어내고, 아날로그와 디지털, 판화를 결합해 그림을 그리고, 실크 스크린 방식으로 완성한 그림책이라니! 어두운 곳에서 UV 랜턴을 비추면 형광빛 그림이 펼쳐지는데, 아빠의 눈에는 안 보인다지만 페이지를 펼칠 때마다 코뿔소와 숨바꼭질하는 듯한 모습을 지켜보는 독자들은 마냥 즐겁다. 게다가 그림을 그린 일러스트레이터 듀오 골든 코스모스가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을 소개하는 장치를 곳곳에 숨겨 놓았는데, 어린 독자들이 자라서 ‘아하! 그때 그림책에서 봤던 게 이런 뜻이었구나’ 하고 알게 되는 순간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기쁘다. 물론 지금 바로 아이와 함께 찾아보는 것도 이 그림책을 즐기는 또 하나의 방법이겠다. 속표지의 그림과 건물 벽에 쓰인 글씨에서부터 시작해 보시길. 그런데 정말 루트비히 방에는 코뿔소가 있었을까?
이숙희_코뿔소책방 대표
-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4년 10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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