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명의 프리다
프리다 칼로 글 / 잔루카 폴리 그림 / 성소희 옮김 / 32쪽 / 16,000원 / 이디X그로
프리다 칼로에 관한 책은 이미 차고 넘친다. 그러나 이렇게 또 새로운 이야기 하나가 나왔다. 어린 시절을 소환하는 짧은 일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고통스러운 생애 어느 시점에 프리다는 「두 명의 프리다」란 제목의 그림 하나를 그렸다. 아픔을 스스로 끊어내고 새롭고 강한 심장을 가진 예술가로 거듭나고자 했던 자기 모습이었다. 이 그림을 그리며 여섯 살에 만났던 상상의 친구를 떠올린 것이다. 자유롭게 뛰어놀기만 해도 부족할 여섯 살의 프리다는 척추성 소아마비를 앓게 된다. 몸이 불편하니 밖으로 나갈 수도 없다. 혼자였고 무척 심심했을 것이다. 상상력을 펼치며 혼자 놀아야 했던 프리다에게는 친구가 필요했다. 달리고 싶었고 춤추고 싶었으며 온몸으로 환히 웃고 싶었을 것이다. 50년이 채 안 되는 생을 마감하기 전 떠오른 기억은 잊고 있었던 어린 시절 상상의 친구였다. 그 기억을 생애 마지막 10년간 쓴 일기 속에 적어둔다. 이 책이 시작된 계기다.
조금씩 불편해지기 시작한 몸으로 맞은 아침이었다. 자기 방 길가로 난 커다란 창에는 김이 서려 있었다. 프리다는 손가락으로 작은 문을 하나 그렸다. 그려놓은 작은 문을 통해 밖으로 나갔다. 상상 친구는 그 문을 통해 만날 수 있었다. 문은 집 앞 우유 가게와 이어졌다. 힘껏 달려가 보니 가게 간판에 동그란 구멍이 있었다. 구멍은 다른 세계로 프리다를 안내했다. 그곳에는 프리다의 모든 걸 털어놓아도 좋을 친구가 있었다. 환히 웃고 공기처럼 춤을 추는 친구의 춤을 잊지 않으려고 열심히 지켜보았다. 그렇게 함께한 시간이 찰나인지 수천 년인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기쁘고 행복했던 기억만 남은 것이다.
글은 프리다가 직접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으로 서술했다. 여백을 많이 둔 장면에는 프리다를 위로하듯 아기자기하고 채도 높은 자연의 친구들이 함께 등장한다. 지병이 시작되는 현실의 프리다는 꽃을 머리에 이었어도 무채색 얼굴이다. 공기 같고 잘 웃는 상상 친구는 온통 초록의 잎으로 그려졌다. 친구를 떠올리거나 함께했던 시간은 좌우 페이지를 데칼코마니처럼 구성했다. 상상 친구는 그야말로 프리다의 내면 깊은 곳으로부터 끌어올린 긍정과 소망의 자아였기 때문이다. 우유 가게 간판 구멍으로 들어간 후 상상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장면은 왼쪽 여백을 크게 두고 오른쪽으로 바짝 빨려들 듯 그렸다. 순식간에 훅하고 움직이는 속도를 느끼게 된다. 상상 친구와 함께 있는 시간은 오른쪽에 여백을 두고 프리다는 왼쪽에 배치했다. 천천히 즐거운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오래 기억하고 싶었던 마음이 보인다. 창문을 통하는 구멍 속 세계는 손으로 쓱 지우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프리다가 일생을 두고 그려온 대상들은 여전히 그 안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화려한 장식과 짙은 화장으로 기억되는 프리다 칼로가 웃는 얼굴이었던 적은 드물었다. 그림 속 어린 프리다는 많이 웃고 있었다. 그걸 보는 것만으로도 치유되는 느낌이다.
김혜진_그림책보다연구소 대표, 『야금야금 그림책 잘 읽는 법』 저자
-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24년 10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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