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알맞은 집
신순재 글 / 은미 그림 / 44쪽 / 15,000원 / 노란상상
좋은 그림책에 대해 생각한다. 다양한 기준이 있겠지만, 좋은 질문을 얼마나 품고 있느냐도 해당된다. 애써 찾아내지 않아도 질문이 저절로 쏟아지는 그림책 『딱 알맞은 집』이 그렇다. 표지를 보며 책장을 쉽게 넘기지 못한다. 씩씩한 할머니와 앞치마를 두른 다정한 할아버지라니! 너무 친숙한데 어디서 봤을까? 알맞은 집이란 어떤 집일까? 집에 관한 한 할 말이 참 많은데. 타이포그래피로 표현된 ‘집’을 형용하는 말 ‘알맞은’도 다시 생각해 본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둘이 살기에 딱 알맞은 집에서 사이좋게 산다. 할머니는 밖으로 나가고 할아버지는 집에서 요리를 한다. 각자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해서일까? 둘은 너무 다르지만 행복하다. 어느 날, 할머니가 집에 돌아올 때마다 동물을 데려온다. 바들바들 떨고 있던 고릴라, 크엉크엉 울고 있던 코끼리, 버둥거리고 있던 북극곰, 어마어마한 대왕고래까지. 동물이 늘어날 때마다 할아버지는 화들짝 놀라 커피잔을 떨어뜨리지만 따뜻하게 받아들인다. 차곡차곡 포개고 끼어 자면 된단다.
좁은 집에 마법이 일어난 걸까? 할머니는 코끼리 등에 엎드려 북극곰에게 책을 읽어주고 고릴라는 그림을 그리고 할아버지는 코끼리 등에 기대어 뜨개질을 한다. 어찌 된 일인지 더 행복해 보인다. 사실, 이토록 다정한 할아버지도 할머니가 대왕고래를 데려왔을 땐 무척 난감해했다. 더 이상 들어올 데가 없다고, 그렇다고 두고 올 수는 없었다며 두 사람은 실랑이를 귓속말로 한다. 동물들이 듣지 않게 하려는 배려가 참으로 사려 깊다. 이야기가 여기서 해피 엔딩이면 좋겠지만, 달팽이 한 마리가 들어오면서 집은 폭발하고 만다. 달팽이가 임계점의 선을 넘는 티핑 포인트 역할을 한 것이다. 결국 다 함께 다른 행성으로 이주하여 딱 알맞은 집을 지어 행복하게 살아간다. 가끔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저 멀리 떠나온 행성을 쓸쓸하게 바라보며 회상한다.
딱 알맞은 집은 지금 우리가 사는 행성, 지구였다. 그러니까 이 책은 인간의 탐욕에서 비롯된 기후위기가 불러온 멸종위기 동물과 지구의 미래를 보여준다. 집에서 보는 신문에 ‘이주의 온실가스’라는 게 있다. 회복 불가능한 기후변화를 초래하는 탄소 수치를 시계 모양으로 나타낸 것인데, 볼 때마다 초조하고 불안하다. 마찬가지로 이 책을 읽고 나니 째깍째깍… 딱 알맞은 집, 지구의 임계점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리는 경고음이 들리는 듯하다.
지금, 여기의 중요한 환경 이야기를 옛이야기 형식에 담아낸 텍스트 읽는 재미도 크지만, 그림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풍성하게 살아 있는 등장인물의 표정은 글 만큼이나 맛깔스럽고, 콜라주를 접목하여 입체적이고 신선한 시각적 표현은 이야기에 쑥 빠져들게 한다. 무대 미술을 전공하고 공연 의상디자이너로 일한 은미 작가의 이력을 알고 나면 흠흠, 고개가 끄덕여진다.
제님_작가, 『그림책의 책』 저자
-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24년 11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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