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얼마짜리입니까
6411의 목소리 지음 / 376쪽 / 20,000원 / 창비
새벽 네 시 반에 탄 버스 안은 조용했다. 날마다 그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처럼 승객들은 묵묵했다. 어떤 이는 깍지를 낀 채 눈을 감았고 누군가는 성경을 펼쳐 들었다. 그들 사이에 앉아 있으니 마음이 숙연했다. 버스가 달려가는 길은 아직 캄캄하다. 내 스카프가 흘러내린 걸 보고 뒤에 앉았던 이가 말없이 추슬러주었다. 한 나이든 여성이었다. 눈인사를 가만히 내게 보낸다.
그 웃음에는 그런 마음이 담겨있었다. 칸칸이 나뉜 의자에 앉아 서로 목소리를 듣지 못해도, 어떤 사람은 옆 사람에게 벌써 인사를 나누고 말없이 안부를 염려해 주고 있었다.
이 책에는 그렇게 막혀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던 이들이 각자의 정류장에 내려 들어간 노동현장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즐겁고 화려하게 보이는 빌딩 뒤편, 묵묵히 하루를 살아내는 사람들의 진짜 이야기가 실려있다. 식당과 도축장과 농촌과 바다에서 식량을 만들고 타인에게 음식을 공급해 주는 이들, 소비자들이 입는 옷을 만들고, 그들의 문 앞에 상품을 빠르게 배송해 주고, 학교와 회사의 일과를 지탱하며, 웹툰과 유튜브까지 만들어내는 이들의 노동 이야기가 실려있다. 대가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치열하게 일해야 하는 이들의 문제의식이 담겨있다. 전반적인 산업에서 노동자가 도구적으로 소모되고 고용을 안정적으로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이 심해지고 있다. 노동자들의 목소리에 대한 사회적 공감은 약화되었다.
차별의 굴레는 겹겹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여성, 이주민, 장애인, 성소수자, 지역민 등의 이유로 또 다른 차별까지 겪는다. 10년 차 여성 대리기사는 성희롱과 손님의 갑질을 겪었다. 하지만 대리기사들 모임에 가입하고 여성 회원들끼리 목소리를 모으며 그 자리를 씩씩하게 지켜냈다. 태안화력발전소 노동자는 환경문제를 걱정하면서 노동자의 일터 문제도 생각하자고 제안하며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을 위한 고민을 펼쳐낸다. 자활노동자는 자립을 돕는다는 일이 제대로 된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을 보면서 노동의 가치를 존중받고 싶어 한다. 웹툰 작가는 악화하는 건강과 불안정한 경제적 보상에 힘겨워하며 노동의 지속가능성을 치열하게 질문한다.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는 “노가다 없이 세상이 돌아가나요?”라고 물으면서 더 나은 노동환경과 조건을 위해 이제 변화가 필요하다고 외친다.
노회찬 의원이 말했던 ‘6411번의 새벽버스’에 몸을 실은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급변하는 사회에서 보이지 않게 일하는 더 다양한 노동자들의 목소리들로 확장되었다. 이 목소리들은 노동 현실을 정직하게 세상에 알리면서, 더 나은 미래를 함께 만들어보자고 제안한다. 글을 쓴다는 것, 자기가 하는 일을 말하고 알린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꿈꾸는 노동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지금의 노동은 변화되어야 하므로 인간의 목소리로 모두 기록되어야 한다.
독자는 자기 삶을 버텨주는 것이 돈이 아니라 이름을 가진 노동자들의 힘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어두운 버스의 칸을 넘어와 자신의 어깨를 소리 없이 도닥여준 이들의 손이 그렇게 따뜻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 노동의 값이 터무니없이 싸고 하찮게 여겨져서는 안 되는 건, 누구에게나 삶이 소중하기 때문이다.
안미선_작가, 『다정한 연결』 저자
-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4년 11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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