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보미 지음 / 52스튜디오 사진 / 456쪽 / 25,000원 / 알에이치코리아
‘강복신’이라는 육상 선수가 있었다. 평양 서문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 시절이던 1931년 전조선여자올림픽대회 200미터에서 29초3의 신기록을 세웠다. 1933년 조선신궁경기대회 200미터에서는 27초6의 신기록으로 우승했다. 그는 도쿄 여자체육전문학교에서 1년 동안 공부하고 귀국한 뒤 동덕여고에서 유일한 여자 체육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한국여성체육 100년 : 구술생애사』에 따르면 강복신은 “개인적 상황보다도 학생들을 먼저 생각하고 열정적으로 학생들을 지도하는 교사”였다.
강복신은 지병인 간장염이 악화해 1944년 5월에 짧은 생을 마감했다. 강복신의 남편은 훗날 아내의 죽음에 대해 “신혼의 꿈 같다는 재미도 모두 잊은 채 집안 살림, 학교 일에 시달리다 처는 스물아홉 한창나이에 가고 말았다. 비통한 일이었다”라고 서술한다. 강복신의 남편은, 1936년 베를린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손기정이었다. 손기정은 누구나 다 아는 마라톤 영웅이지만, 강복신에 대해 알고 있는 이는 극히 드물다. 그만큼 여자 체육인이 잘 드러나지 않던 시대였다. 지금은 아니다. 강복신의 후예들은 당당하게 자신의 이름을 걸고 그라운드와 코트를 누빈다.
『자기만의 그라운드』는 현재를 치열하게 살아가는 여자 스포츠 선수에 주목한다. 저자는 우리나라에서 각자의 종목을 가장 잘하는 열두 명의 여자 스포츠 선수를 인터뷰했고 ‘구질구질한 나날의 반복’을 통해서 최고로 우뚝 선 이들의 이야기를 글로 담담하게 풀어낸다.
여자프로농구 1라운드 2순위로 프로 유니폼을 입은 김단비는 “슛 하나도 제대로 못 쏜 채로 입단했으나” 부단한 노력 끝에 챔프전 우승 반지 일곱 개를 꼈다. 그는 서른 중반의 나이지만 ‘리빙 레전드’로 여전히 국내 선수 ‘원톱’으로 있다.
김라경은 야구가 하고 싶어서 재수 끝에 전문 야구 선수가 아니어도 리그에 뛸 수 있는 서울대에 입학해 기어이 대학야구연맹 역대 최초의 여자 선수가 됐다. 그가 가는 모든 길에는 야구가 있었고, 모든 결정의 이유는 다 야구였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 주장을 지낸 국가대표 에이스 한수진은 음대에 피아노 전공으로 입학했다가 아이스하키 국가대표로 졸업한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진짜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한” 결단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높이뛰기 선수로 전국소년체전에서 금메달을 땄던 김희진은 남다른 점프력으로 배구 선수가 된 뒤 올림픽에 3연속으로 참가했다. 무릎 수술 직후 출전한 도쿄올림픽에서는 한국 여자배구 4강 신화를 일궈내기도 했다. 긴 재활의 시간을 보낸 김희진은 “이번 아니면 다음 시즌이 마지막인 은퇴를 앞둔 선수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누구보다 간절하고 즐겁게 움직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라고 했다.
이들 외에도 김선우(근대 5종), 박혜정(역도), 최유리(축구), 윤현지(유도), 김은별(씨름), 김자인(스포츠클라이밍), 이나현(스피드스케이팅), 나아름(사이클)의 이야기가 책에 담겨있다.
누구나 자기만의 그라운드가 있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오롯이 성별과 관계없이 나만의 그라운드에서 주인공이 되려는 이들을 응원하게 된다. 그리고 나를 응원하게 된다.
김양희_한겨레신문 기자, 『인생 뭐, 야구』 저자
-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5년 2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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