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 스미스는 그림책작가로서의 활동 기간이 그리 길지 않음에도 독보적인 서사 기법과 마음을 흔드는 그림으로 전 세계적으로 큰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2024년에는 아동문학계에서 최고로 권위 있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을 수상했습니다. 이 글에서는 시드니 스미스의 작품 중에서 뽑은 세 작품을 통해 그의 독창적인 시각적 내러티브 기법을 살펴봅니다.
글이 전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전하는 그림
그림책의 쪽수는 일반적으로 40쪽, 48쪽과 같이 8배수로 이루어지는데 『바닷가 탄광 마을』(국민서관, 2017)은 특이하게 52쪽입니다. 이렇게 된 것은 시드니 스미스가 마지막에 한 장을 추가했기 때문인데, 그것은 이 책의 압권이라 할 기다림과 기대와 설렘과 안도감을 그려낸 글 없는 펼침면입니다. 이 펼침면의 앞 장은 후렴구처럼 반복되는 “그리고 바다 저 아래 깊은 곳에서 아빠는 석탄을 캐고 있어요”라는 글이 나오고 뒷장은 저녁 시간에 아빠가 무사히 돌아오는 이야기가 나오기 때문에, 글의 전개상으로는 무리해서까지 추가할 이유가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그림을 보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시드니 스미스는 계속 반복되는 글과는 다른 이야기를 그림을 통해 전개했어요. 먼저, 광부들이 느닷없는 사고와 죽음이 도사리는 위험한 갱도 안으로 삽과 곡괭이를 들고 수레를 밀고 들어가는 장면이 나오고, 다음으로 굴착기로 석탄을 캐는 장면, 갱도 한쪽이 와르르 무너지고 광부 둘이 손으로 입을 가리고 피하는 장면, 그리고 광부들은 보이지 않고 갱도의 절반이 무너진 장면이 나옵니다. 바로 이 장면에서 죽음을 읽은 독자들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그다음 장에 아빠가 집으로 돌아와 가족과 화기애애하게 저녁을 먹는 장면이 나온다면, 아마 지금껏 이야기에 몰입했던 독자들이 곧바로 이야기 밖으로 튕겨 나오고 말 겁니다. 시드니 스미스는 그 사이에 속도가 느린 침묵의 한 장면을 끼워 넣어, 독자들이 차분히 숨을 고르고 마침내 집으로 돌아오는 아빠와 하루 종일 아빠를 기다린 아이의 심정을 오롯이 느낄 수 있게 합니다.
감정을 그리는 그림
시드니 스미스의 첫 창작 그림책인 『괜찮을 거야』(책읽는곰, 2020)에서는 대도시 중심가에서 작은 존재로 살아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표현하기 위해 몽타주 기법이 사용되었어요. 거대하고 분주한 도시 풍경을 여러 개의 작은 프레임에 담는다거나 한 장면을 여러 개로 분절함으로써 도시는 더욱 혼잡하고 차가운 공간으로 그려지고, 소년의 위축되고 혼란스러운 내면과 한층 더 극적인 대비를 이룹니다. 공원 전봇대에 고양이를 찾는 전단을 붙이고 난 뒤에 이어지는 두 펼침면은 이 이야기의 절정입니다. 앞의 펼침면은 글 없이 가로로 긴 세 프레임에 시나브로 변하는 공원의 모습만 담겨있어요. 독자는 몇 분일지, 몇 시간일지 모를 침묵이 흐르는 동안, 점점 굵어지는 눈을 맞으며 홀로 공원에 서있는 주인공의 심정과 만납니다. 그리고 그다음 펼침면에서 폭설이 무섭게 휘몰아치는 가운데 소년은 지금껏 “괜찮을 거야”라며 전하지 못했던 진짜 속내를, 폭설로 인해 시야가 뿌옇게 가려진 틈을 타서 드러냅니다. 따듯하고 안전한 집으로 돌아오라고 말입니다.
몰입을 넘어 경험하게 하는 그림
『기억나요?』(책읽는곰, 2024)는 사랑하는 사람과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를 추억으로 만드는 이야기입니다. 기억은 지극히 주관적이라, 한날한시에 함께 겪은 사건도 각자의 시점이나 경험치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갖게 마련이죠. 시드니 스미스는 자신의 어릴 적 경험을 바탕으로 가족의 사랑을 되새기는 이야기를 독자에게 전달하기 위해 ‘시점 샷(Point of View Shot)’이라는 해법을 택했어요.
시점 샷은 영화에서 등장인물의 시점으로 촬영하는 방식을 말합니다. 주인공이나 특정 연기자의 시선으로 사건을 보여주어, 관객이 마치 그 인물이 되어 상황을 직접 보고 경험하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하지요. 시드니 스미스의 다른 책에서도 주인공의 감정을 시각화하는 데 시점 샷을 활용한 사례를 찾을 수 있어요.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책읽는곰, 2021)에서 선생님이 물어봤을 때 반 아이들이 모두 주인공을 향해 돌아보는 장면이 그 한 예지요. 주인공이 부옇게 흐려진 시선으로 앞을 바라보는 장면은 독자가 주인공이 느끼는 당황과 슬픔과 답답한 감정에 더 쉽게 이입하게 합니다.
『기억나요?』에서는 두 명의 화자가 교대로 기억을 말하는 동안 각 화자의 손이나 발, 혹은 그림자의 일부를 그림 속에 그려 넣음으로써, 독자가 책 속의 인물이 되어 그들의 매우 사적이고 친밀한 기억을 공유하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합니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낯선 도시를 달리는 자동차 안의 장면인데, 이 장면은 마치 내가 그 좁은 자동차 안에 들어가 백미러를 통해 미소 짓는 아이의 얼굴을 흘깃흘깃 보면서 눈이 펑펑 내리는 낯선 곳에서 운전하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합니다.
김난령_번역가, 그림책 연구가
-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25년 2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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