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그림책작가의 세계 - 장선환
장선환은 그림 솜씨가 뛰어난 작가다. 그림책작가의 그림이 좋은 거야 당연하지만, 그에게는 뛰어나다는 수식어가 과하지 않다. 어린 시절부터의 수상 경력, 대학의 강의 경력을 굳이 들지 않아도 된다. 코믹만화 같은 그림부터 밀도 높은 회화 같은 작품까지, 필체도 다양하다. 뽀뽀아기 그림책부터 신비로운 분위기의 매직 리얼리즘 일러스트까지, 현란하다. 그런데 그림책작가로서 본격적인 주목을 받는 것은 데뷔 십여 년이 지난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참 늦다.
장선환은 난독증이 있다. 왜 책이 잘 안 읽히나, 다른 사람보다 몇 배 더 힘드나, 자꾸 생각이 딴 데로 흘러가나, 읽은 것들이 그저 이미지로만 떠오르나 하고 있었는데 마흔이 되어서야 난독증이라는 걸 알았단다. 참 늦다. 장선환은 그 늦음이 오히려 감사하다고 한다. 부담에서도 자만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었으니까. 뒤처지고 실패하고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오래오래 노력했던 게 좋은 경험이었다고 한다. 그는 그런 경험 덕에 『선로원』이 지금 이렇게 나올 수 있었다고 여긴다. 거의 20년 전부터 구상했던 『선로원』은 제2회 대한민국 그림책상 특별상을 받았고, 과달라하라 도서전에서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은 책 중 하나였다.
장선환은 그림책작가로서의 여정에서 뚜렷한 변모를 여러 번 보여준다. 첫 책 『네 등에 집 지어도 되니?』는 새 부부의 둥지로 공룡이 자기 등을 내준다는 친절한 이야기로 줌아웃과 줌인이 다채롭게 구사되는 앵글, 여러 종류의 공룡, 풍성한 배경, 활달한 색상 등 볼거리가 많은데도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나는 그 책이 왠지 경직된 느낌이었다고 말했고,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차갑단 소리를 많이 들었어요.”
그러나 경직과 차가움은 첫인상일 뿐, 이후의 책들은 경쾌함과 부드러움, 따뜻함, 역동성 안으로 차츰 넓고 깊게 들어간다. 공룡 이야기 2탄이라고 할 수 있는 『우리가 도와줄게』도, 온갖 동물들의 경쾌한 모습들이 펼쳐지는 『아프리카 초콜릿』도 그 첫인상 밖으로 뻗어나간다. 모든 장면이 독립된 회화작품으로도 보이는 『파도타기』는 같은 작가의 작품이 맞나 싶을 정도이다. 『갯벌 전쟁』은 그 모든 요소들의 집합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흰무늬 갯벌과 회색 무늬 갯벌 사이에 전쟁이 터져 온갖 종류의 게들이 전면전을 벌이는 이 기발한 책은, 그 장대한 스케일과 치밀한 세부 묘사가 압권이다. 「스타워즈」 「반지의 제왕」 등 알만한 영화의 전투 장면이나 캐릭터 오마주도 쏠쏠한 볼거리다. 전쟁은 장군에게 맡기고 황급히 피난 가는 여왕과 대신들 같은 씁쓸한 풍자, 대전투 뒤의 폐허 같은 아픈 고발도 있다. 갯벌을 초토화할 작정(?)으로 몰려드는 인간 군단과의 비장한 전투 각오로 마무리되는 엔딩의 유머는 화룡점정이다. 작가는 어떤 북토크에서 ‘갯벌 좀 안다’며 나선 중년 남자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고 말한다. “어떻게 이렇게 갯벌 생물들의 사실성을 그대로 가져가면서도 풍성하게 의인화시킬 수 있었습니까?”
그의 책 중 가장 두드러지는 분기점은 아무래도 『아빠 새』일 것이다. 2018년 첫 출간 후 6년 만에 다시 펴낸 『날아라 아빠 새』는 『아빠 새』와 함께 그의 작품 세계가 보여주는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다. 아기에게 먹일 물고기를 약탈자 가마우지와 송골매에게서 지키기 위해 필사의 비행을 펼치는 아빠 새의 뜨거운 움직임은, 경직되고 차가워 보인다는 첫인상을 완전히 몰아내고 있다. 이 두 책의 표지가 다른 점이 인상적인데, 『아빠 새』는 저공의 수평비행을, 『날아라 아빠 새』는 벼락같이 치솟아 오르는 수직 비행을 보인다. 두 책을 나란히 놓고 보면 이야기가 이어진다. 첫 권에서는 다급하고 불안해 보였던 아빠 새가, 두 번째 권에서는 파도를 박차고 날아오른다. 둘 다 입에는 여전히 먹이를 문 상태다. 치솟아 오르는 아빠 새의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그 몸짓에는 결기가 넘친다. 하늘을 향해 힘껏 뻗은 날개는 잘 벼린 칼처럼 보인다. 그 옆에서 부서지는 물거품은 춤추는 응원단 같기도 하다. 쫓기며 추락할 듯 힘겹게 바닥에서 퍼덕이던 아빠 새는 6년을 물밑에서 와신상담했던 걸까. 그러는 중에도 내내 놓치지 않았던 아이 먹일 물고기가 이 아빠 새를 솟구쳐 오르게 만드는 힘이었다는 말일까.
수평에서 수직으로 아빠 새를 움직이게 했던 이 힘은 『선로원』에서 다시 수평으로 발휘된다. 줄지어 놓이는 침목, 긴 레일, 그것들이 연결되어 만드는 긴 기찻길. 책 속의 많은 장면을 기찻길이 가로지른다. 곡괭이를 휘두르는 선로원들이 일렬로 늘어서 있고, 흐르는 강물 앞에는 강가 풀밭에서 도시락을 먹는 사람들이 나란히 앉아 있다. 그리고 기찻길은 수평선 아득한 바다로 이어진다. 그러나 수평 에너지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곧고 높게 선 나무들, 가로 방향으로 그려진 철길은 수직의 에너지도 뿜어낸다. 침목과 레일이 엮여 긴 철길을 만드는 것처럼 이 두 방향의 흐름이 짜이며 장선환 그림책의 궤적을 그려낸다.
많은 사람들이 『날아라 아빠 새』와 『선로원』에서 아버지의 노고를 본다. 그러나 작가는 그것들이 단지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만은 아님을 강조한다. ‘이어짐’을 말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기찻길을 통해 물리적인 이어짐을 만드는 아버지에 이어 아들은 그림책을 통해 정신적인 이어짐을 만든다는 게 보인다. ‘아버지가 놓은 그 길을 따라’ 아들은 넓은 ‘세상으로 나간다.’ 아버지가 구해온 양식으로 자란 새는 높고 깊은 세상을 겪으며 다시 자신의 아이를 키울 것이다. 유난히 역사책 일러스트를 많이 그린 작가는 그렇게 과거와 현재도 이어주고 있으며, 미래도 그런 식으로 이어질 것이다. 왕릉이 보이는 고적한 작업실에서 그림에만 몰두했던 이 작가는 지금 더 넓은 세상과 이어지며 뻗어나가고 치솟아 오르는 중이다. 그 길옆에서 나도 어딘가에 이어지지 않을까.
김서정_작가, 평론가, 『판타지 동화를 읽습니다』 저자
-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25년 2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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