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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역사가 담긴 말의 변화

by 행복한독서

사연 없는 단어는 없다

장인용 지음 / 332쪽 / 22,000원 / 그래도봄



종종 어떤 단어나 지명의 유래가 궁금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나름대로 유추를 해보는데 마땅치 않을 때는 인터넷 검색을 활용하기도 한다. 물론 인터넷으로 검색해도 명확한 해답을 얻지 못할 때도 많다. 나처럼 궁금한 게 많은 사람에게 맞춤한 책이 나왔다. 『사연 없는 단어는 없다』는 30여 년간 인문 및 과학 분야의 출판인으로 좋은 책들을 많이 만든 저자 장인용의 인문학적 탐색이 돋보이는 책이다. 저자는 단어의 어원과 역사, 문화적 맥락을 탐구하며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들의 실제 의미와 쓰임,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낸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말의 변화에는 우리가 겪어온 삶과 역사가 담겨있다고 말한다.


“어원이란 말에 새겨진 과거의 흔적을 찾는 일이기에 옛날이야기 같은 재미가 있다. 재미뿐만 아니라 말에 관한 지식을 얻을 수 있기에 정확한 어휘 구사에도 도움이 된다.”


저자의 말처럼 이 책을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미처 몰랐던 내용을 새롭게 알게 된 재미도 좋았고, 대강 유추했던 생각이 맞았을 때는 절로 기분까지 좋아졌다. 물론 뒤통수를 맞는 느낌까지 들 정도로 내 생각과 전혀 달랐던 것에서 유래된 단어도 적지 않았다.

예를 들면 ‘보름’ ‘순대’ ‘사돈’과 같은 단어들이 만주어에서 유래되었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된 사실이다. 이처럼 우리말에 만주어, 몽골어, 거란어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한 나라의 언어 형성이 오랜 기간 주변 민족과 교류하며 이뤄졌음을 의미한다. 순우리말로 알았던 ‘사냥’이 ‘산행(山行)’에서 왔고, ‘시시하다’고 말할 때의 ‘시시’도 원래 ‘세세(細細)’라는 한자에서 왔다고 하니 언어의 변화가 참 놀랍다.


저자는 이 책에서 기존의 어원학에서 큰 관심을 두지 않던 지명이나 종교 유래 용어도 많이 다뤘다. 그 덕분에 평소 궁금했던 것들을 해소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서울, 고양, 김포시 등에 공통으로 있는 가좌동(가좌마을)의 ‘가좌’가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순우리말 지명인 ‘가재’를 비슷한 발음의 한자를 끌어다 붙인 것이라는 설명이다. 아쉽게도 정겨운 ‘가재골’은 사라지고 생뚱맞은 ‘가좌’란 지명만 남았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많이 쓰는 단어 중 불교용어에서 비롯된 단어가 꽤 많다는 사실도 새롭게 알게 되었다. ‘현관, 식당, 강당, 탈락, 천당, 점심, 스승, 주인공’과 같은 단어들이다. ‘교회, 예배, 설교, 찬송, 기도, 신앙’과 같은 기독교의 핵심 용어들이 모두 불교용어인 점도 무척 흥미롭다. 아마도 대부분의 기독교인이 미처 몰랐던 사실일 듯싶다.


이 책은 작은 출판사인 그래도봄에서 나왔다. 저자의 페북을 보니 처음 이런 책을 만들자고 제안한 사람이 그래도봄의 오혜영 대표라고 한다. 어떤 방향으로 쓸지 몰랐던 저자에게 긴 기획서를 보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글 분량과 스타일까지 세심하게 제시한 덕분에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는 멋진 책이 나올 수 있었다. 내공이 깊은 편집자 덕분에 귀한 책이 나왔다. 독자의 한 사람으로 고마운 인사를 드린다. 『사연 없는 단어는 없다』는 기획력을 갖춘 편집자가 우리의 출판문화를 풍성하게 만들고 독자들에게 책 읽는 재미를 한껏 선물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한상수_행복한아침독서 대표, 『나는 책나무를 심는다』 저자


-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5년 4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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