춥고 더운 우리 집

비인간 존재가 주는 위안

by 행복한독서

춥고 더운 우리 집

공선옥 지음 / 240쪽 / 15,000원 / 한겨레출판



나이가 들수록 자연이 좋아진다. 꽃잎의 빛깔과 나뭇잎의 모양이 신기하고, 시시각각 달라지는 하늘빛이 눈에 들어온다. 바람이 다른 동식물들에 움직임을 일으켜 저를 드러내는 방식에도 관심이 간다. 형태가 없이도 자신을 드러낼 수 있구나! 자연에 방치된 낡은 건물이나 시설물에도 새삼스럽게 관심이 간다.


젊은 날엔 그렇지 않았다. 자연이나 풍광, 동식물이 따분하게 느껴졌다. 아마도, ‘사람’에 절대치를 부여했기 때문이리라. 젊었던 날엔 그랬다. 세상엔 ‘선한 사람’이 따로 있고, 선한 사람에 어울리지 않은 특성이 조금이라도 엿보이면 멀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누군가가 세상에 나쁜 ‘사람’은 없고 나쁜 ‘상황’이 있을 뿐이라는 말을 하면 속으로 혀를 찼다. 비겁한 소리!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러다 세월과 함께, 세상 어디에도 ‘언제나 선한 사람’은 없으며, ‘절대적으로 옳은 길’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조금씩 시야가 넓어졌다. 사람이 아닌 사물, 자연이라 불리는 ‘비인간 존재’들이 의미를 가지고 다가오기 시작했다. ‘사람’에 대한 절대화가 무너졌을 때에야 사람을 에워싼 넓은 세상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춥고 더운 우리 집』은 ‘집’에 관한 이야기다. 작가가 살아왔던 집, 찾아 헤맸던 집, 지금 살고 있는 집에 얽힌 구체적인 사연들이다. 인물이 아닌 장소에 방점을 두고 이야기를 펼치기에, 그 장소의 일부였던 인물들이 곡진하게 색상을 입으며 드러난다. 거쳐왔던 장소들을 채웠던 인간과 사물, 동식물 들을 샅샅이 훑는 작가의 손길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자본주의 사회’라 불리는 세상에서 배경으로 물러나 있던 수많은 요소들이 전경으로 배치되는 그윽한 마법을 맛보게 된다.


비수도권의 ‘서울말’이 아닌 지역어가 쓰이는 곳에서 피어나는 다양한 삶을 만날 수 있는 이 풍요로운 책의 백미는 광주의 지하철역 주변에 진을 치고 앉아있는 할머니들을 그린 장면이다. 돈의 힘이 나날이 거세지는 세상에서 ‘비생산인구’라고 간단하게 분류되는 이들이 어떤 풍경으로 자리 잡는지를 생생하게 묘사해낸 작가 덕분에, 독자는 그동안 무심코 지나쳐갔던 존재들에 새로운 시선을 얹을 수 있게 된다.


개인적으로 눈을 동그랗게 뜨게 되었던 장면도 있다. 최근 몇 년 새 내게 동네 아이들을 ‘아가’라 칭하는 버릇이 생겼는데, 이 책의 후반부에 접어들면서 그 연원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내가 나고 자란 고향인 ‘전라도’라는 지역적 특성과 관련이 있었다. 그 지역의 ‘엄마’들은 비단 내 자식이 아니더라도 나이 어린 모든 생명체에게 ‘아가’라는 말을 즐겨 쓴다고 한다. 마흔 중반을 넘기며 갑자기 내게서 ‘아가’라는 말이 빈번하게 튀어나왔던 건 아마도 어린 시절 내게 날아왔던 여러 ‘엄마’들의 정겨운 음성이 몸에 담겨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뚜렷한 이유 없이 마음에 불안을 느끼는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구체적인 사물과 지명, 기후가 나오는 이 작은 책이, ‘인생은 아름답고 당신은 결국 잘 될 것이다’는 식의 문장은 단 한 번도 나오지 않는 이 물성 가득한 책이, 적지 않은 분량의 안정과 위안을 줄 것이다.


정아은_작가, 『당신이 집에서 논다는 거짓말』 저자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1년 7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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