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만드는 집

by 행복한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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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

김소희 지음 / 212쪽 / 15,000원 / 만만한책방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

하재영 지음 / 224쪽 / 15,000원 / 라이프앤페이지



대학을 다니느라 자취를 시작하면서부터 자주 이사를 다녔다. 그때마다 내가 살던 집에 넌더리를 내면서 떠났다. 지하철역과 멀어서, 지나가던 남자가 나를 보고 집 앞까지 따라와 팔을 잡고 끌고 가려 해서, 집에 들어가니 누가 창문을 뜯고 들어온 흔적이 있어서, 서울 어딘가에 지금 내가 사는 곳보다 나은 집이 있으리라는 희망을 꼭 붙잡고 짐을 쌌다. 김소희 작가의 만화 『자리』의 주인공처럼.


『자리』는 만화가 지망생인 ‘송이’가 자신의 공간을 찾아가는 고군분투기다. 미대를 갓 졸업하고 자신의 작품으로 생계를 꾸려가려는 송이에게 서울은 좀처럼 머물 곳을 허락하지 않는다. 목욕탕을 개조한 집은 시멘트 바닥의 냉기가 뼛속까지 얼어붙게 만들고, 옥탑방의 바닥은 나무 뚜껑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아래층과 연결되어 있어서 사생활 보호를 바랄 수 없다. 싱크대 옆에 변기가 있어서 요리와 용변을 한 공간에서 해결해야 하는 일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보안이 허술한 반지하 집은 쉽사리 범죄의 표적이 된다.


수많은 집을 옮겨 다니는 과정에서 송이는 때때로 지독한 외로움과 맞닥뜨린다. 함께 살던 친구는 떠나가고, 만화가가 되고자 했던 목표는 좀처럼 손에 잡히지 않는다. 한낮의 도로에 우두커니 서있는 송이의 뒷모습에선 세상에 홀로 내던져진 이의 막막한 심정이 묻어난다. 그러나 송이는 오래 멈추어있지 않고 자신만의 속도로 꾸준하게 나아간다. 송이의 삶을 지켜보는 일이 마냥 아프지만은 않은 이유는 이 꿋꿋한 발걸음 때문이다. 서른 살을 맞이한 송이는 반지하에서 벗어나서, 문을 열면 하늘이 보이는 옥탑방을 얻는다. 그는 작은 조각배 같은 집에서 자신이 꿈꾸는 삶을 향한 항해를 이어갈 것이다.


하재영 작가의 에세이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를 펼치면 이런 문장이 나온다.

“그곳에 살지 않았다면 지금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유년 시절 대구 북성로 집에서 현재 거주하는 서울 종로의 집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집들의 기억을 담은 이 책은, 공간이 삶에 미치는 영향을 섬세한 시선과 담담한 문장으로 보여준다. 유년의 집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회적 모순을 접하는 공간이다. 사는 집에 따라 친구들 사이에서 계급이 만들어지고, 아무리 넓은 집에 살아도 자기만의 공간 없이 가사 노동에 얽매인 엄마의 삶을 목격하게 되는 곳. 한편 성인이 된 이후 저자가 거주했던 재개발 인근 지역의 집들은 사는 이에게 끊임없이 불안과 맞서도록 요구한다. 집주인은 집수리에 한 푼이라도 돈을 쓰게 될까 봐 날을 세우고, 잠시 머물렀다 떠나가는 이웃들은 서로 욕하고 싸우기 일쑤다. 저자는 여러 집을 거치며 자신의 삶을 지키는 법을 배워간다.


두 책을 보며 내가 지나온 집들이 떠올랐다. 어딘가 조금씩 불편하고 불만족스러웠던 내 집들. 그곳에서 보낸 불안과 고독의 시간이 나라는 사람을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아무리 넌더리 내며 떠나온 집이라도 조금은 연민 어린 시선으로 보게 된다. 비록 온전하게 완성된 그림은 아니었지만, 내가 거쳐온 집들은 모두 내가 살고 싶은 삶의 모습이 담겨있다. 집을 찾아다니는 일은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이해하는 과정이었다.


배윤민정_작가, 『나는 당신들의 아랫사람이 아닙니다』 저자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1년 2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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