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는 그림책 공간 - 그림책산책
독립책방 ‘책봄’의 단골이었던 나는 어느 날 책봄 사장님에게 “여기서 책방 해볼래요?”라는 말을 듣게 된다. 둘째가 태어난 지 6개월 정도 됐을 무렵이었다.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나는 속으로 ‘네!’라고 외쳤다. 하지만 아이 둘을 키우며 책방을 운영하려면 여러 사람의 도움이 필요했다. 남편과 친정 엄마를 설득해 책방을 하기로 결정했고, 그때가 2018년 여름이었다.
경북 구미시 산책길 31 지하 1층. 구미의 첫 독립책방 책봄이 생겨난 그곳에서 그림책 책방을 열었다. 내가 만든 그림책 모임 ‘그림책산책’은 책방의 이름이 되었다. 구미의 첫 그림책 책방이었다. 그림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지역의 중형서점 삼일문고, 독립책방 책봄과 함께 ‘작가와 함께하는 작은서점 지원사업’에 선정되며 매달 두 명의 그림책작가를 책방에 모실 수 있었다. 10평 남짓한 지하의 작은 공간에 많게는 서른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였다. 지금은 아련한 추억이 되어버렸지만 환기도 되지 않았던 그 좁은 공간에 그림책작가를 만나기 위해 그림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렇게 조금씩 자리를 잡아갔다.
코로나가 닥치고 유난히도 장마가 길고 심했던 2020년 여름. 2년 정도 지하에서 책방을 운영했을 무렵, 어느 날 책방 바닥에서 물이 자꾸만 올라오기 시작했다. 책방 행사를 앞둔 날 밤, 많은 사람이 바닥을 밟으면 물이 더 새어 나올까 봐 뭐라도 깔아두려고 책방에 나갔더니 건물주가 바지를 걷어 올리고 책방 바닥을 열심히 닦고 있었다. 그리고 건물주는 “다른 곳 한번 알아보는 게 어때요?”라는 청천벽력 같은 말을 했다. 손님들이 한 번씩 “1층으로 올라갈 생각 없어요?” “햇빛 받는 곳에 있으면 이 그림책들이 더 예뻐 보일 텐데”라는 말을 건넬 때에도 “저는 여기가 좋아요”라고 말했던 나였다. 산책길이라는 주소 위에서 그림책산책은 떨어질 수 없다고 생각했다. 오래오래 한 곳에서 책방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지하책방 건너편 내가 자주 걷던 골목 안에서 작은 공간을 발견했고 산책길의 그림책산책은 구미역 뒷골목으로 이사를 했다. 이곳에서 나는 코로나를 버텼고 제2의 그림책산책을 걷는 중이다.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내가 유일하게 함께하길 좋아하는 것이 그림책이다. 혼자 그림책을 읽는 것보다 누군가에게 읽어주는 것을 좋아한다. 귀로는 읽어주는 사람의 목소리로 전해지는 글을 듣고, 눈으로는 작가가 그린 세상을 바라본다. 청각과 시각이 하나가 되는 경험을 하고 나면 우리는 조금씩 자신의 이야기를 꺼낸다. 함께 그림책을 읽으며 서로의 목소리를 나누고 서로의 이야기를 듣는 ‘함께 읽기’를 즐긴다.
어느 날 꽂히게 되는 주제 또는 작가의 그림책을 시작으로 신나게 그림책 파도타기를 한다. 그렇게 발견하게 된 그림책들을 ‘관계, 나무, 환경, 여성, 기록, 어린이’ 등 몇 가지 주제로 묶어 책방에 진열한다. 그림책을 주로 판매하는 그림책 책방이지만 일반 책들과 함께 큐레이션 하길 좋아한다. 기록에 관한 책을 읽다 보면 기억이나 기록을 이야기하는 그림책들을 찾아보고 함께 진열하기도 한다. 성평등을 이야기하는 그림책 옆엔 이해를 돕는 페미니즘 책을 함께 놓아두기도 한다. 그리고 이 책들이 함께 놓인 이야기를 손글씨로 써서 붙여두곤 한다. 조용한 책방에서 그 글을 읽으며 그림책에 마음을 여는 손님들도 있다.
나는 작은 소명 의식을 가지고 책방을 운영하고 있다. 바로 그림책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 내가 책방을 하는 가장 큰 목적이기도 하다. 그림책은 0세부터 100세까지 남녀노소 누구나 읽기 쉬운 책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책방을 운영하며 그림책이라서 더 다가가기 힘든 부분도 있다는 걸 느꼈다. 그래서 나는 그림책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노력한다.
플리마켓에 나가 그림책을 팔고 ‘그림책 버스킹’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었다. 그런 작은 일들이 지역문화와 연결되며 더 분명해졌다. 그림책을 매개체로 책방과 사람들을 연결하는 것. 그림책산책은 작년부터 지역문화진흥원에서 주관하는 ‘문화가 있는 날 동네책방 문화사랑방 지원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2020년엔 ‘우리가 사랑한 산책길’이라는 이름으로 산책을 주제로 하는 이야기들을 모았고 올해는 ‘골목의 기억, 예술의 기록’이란 이름으로 골목 안에 있는 다양한 문화공간과 협력하여 재밌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 그 중심엔 늘 그림책이 있다.
책방 ‘그림책산책’의 이름 뒤에는 ‘함께 걸을까요?’라는 말이 붙는다. 나는 그 말처럼 구미에서 오래도록 ‘그림책’으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천천히 ‘함께’ 걷고 싶다.
• 경북 구미시 원남로10길 19, 1층
• 010-5487-6459
하정민_그림책산책 대표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21년 8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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