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시대에 오신 것을 애도합니다
박정재 지음 / 264쪽 / 18,800원 / 21세기북스
어떤 근거를 들어 충분히 설명해도 도저히 설득되지 않는 일이 있다. 우리 일상에 깊은 영향을 끼치는 일이 아니어도 답답한 법인데, 긴급하고 서둘러야 할 일인데도 요지부동이면 안타깝기 짝이 없다. 해수면이 높아져 섬나라가 물에 잠기고, 그 잘사는 유럽이 홍수에 시달리고, 미국에서는 엄청난 규모의 산불이 나 삶터를 위협하는 장면을 보고, 지난여름 기록적인 폭염을 직접 겪었으면서도 기후위기를 애써 부정하는 사람을 만난다. 도대체 왜 그럴까 하다가도 이 개명 천지에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에 조금은 분이 삭혀지기는 한다.
지구 차원에서 맞이한 위기 상황이 자연 활동 때문이 아니라 인간 활동 탓에 벌어진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졌다. 그럼에도 이를 굳이 부정하는 사람을 설득하는 데 맞춤한 책이 박정재의 『인간의 시대에 오신 것을 애도합니다』이다. 지은이는 이미 『기후의 힘』과 『한국인의 기원』에서 과학과 인문학을 융합해 기후위기의 근원과 파급효과를 깊이 있게 톺아본 바 있는데, 이 책은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위기 상황의 기원과 대책을 설득력 있게 말한다.
책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다. 인간의 시대라 하면, 물질문명의 총화를 누리는 시기라 짐작하게 마련이고, 그런 시대라면 환영해야 마땅하지 않은가. 그런데 어찌 애도하자는 걸까? 먼저 지은이는 인류세라는 말을 꺼내 든다. 노벨 화학상을 받은 네덜란드의 대기화학자 파울 크뤼천이 2000년 인류세라는 용어를 공식화하자고 학계에 제안하면서 널리 알려진 말이다. 산업혁명 이후 대기의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아지면서 지구의 기후 환경이 뚜렷하게 변한지라 18세기 후반부터 인류세라는 새로운 지질시대로 이름 짓자는 주장이었다. 물론 공식적인 학술용어는 아니다. 2024년 3월 국제지질학연합 산하 제4기 층서소위원회에서 주관한 투표에서 인류세 지정이 부결되었다. 그럼에도 인류세라는 용어를 강조해 쓰는 것은 기후위기, 생태계 위기, 환경오염, 기후난민 문제를 널리 알리는 데 가장 적절하다고 여겨서다.
지은이는 지금 우리가 겪는 위기 상황이 얼마나 극심한지, 제목대로 ‘애도’할 만한지, 과학적 근거를 들어 깊고, 충실히 설명한다. 심각한 상황을 다루고 있지만 읽는 이에 따라서는 이 부분이 흥미로울 수도 있다. 우리가 아는 역사가 기후 문제와 얼마나 밀접한 관련이 있는지 확인하는 대목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지구적 위기를 더는 부인하지 않게 되었다면 4부 “지구의 폭군이 될 것인가, 구원자가 될 것인가”에 더 깊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인류세로 상징된 위기를 벗어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설명하고 있어서다.
지은이는 다른 무엇보다 사고와 가치의 대전환을 요구한다. 인류세가 낳은 현안은 시장 기반의 접근 방식이나 지구 공학으로는 단기적 효과는 있을지언정 장기적으로는 기대한 만큼의 효과를 거두기 힘든 탓이다. 대신에 인류세에 적합한 윤리와 철학을 세우고 이를 바탕으로 사회의 가치를 바꿔나가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알고 보면 심각한 상황인데, 대처는 늦어 불안하고 우울해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지은이는 인류세 위기를 넘어설 수 있다는 긍정적인 사고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머리는 비관하더라도 가슴으로는 낙관해야 이 위기를 넘어설 수 있을 터다.
이권우_도서평론가, 『발견의 책읽기』 저자
-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5년 5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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