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합니다, 새로운 시공간 ‘시계탕’으로

by 행복한독서

시계탕

권정민 글·그림 / 56쪽 / 16,800원 / 웅진주니어



바늘이 똑같아요! 일곱 살 아이들이 교실 시계를 가리켰다. 정말이었다. 제목 화면 속 네모난 시계의 뾰족한 바늘 모양이, 교실 것과 똑같았다.

어, 근데 짧은 바늘이 없어요! 달팽이가 있어요! 시계 안에 글자가 있어요!

왁자한 소리는 엄마가 시계로 변하고, 완전히 멈춘 대목에 이르자 잠잠히 가라앉았다.

“10분 내로” “3분 후에” “1분 남았어!”

시계처럼 말하는 엄마 곁에서 “내가 왜 그래야 하지?” 생각하는 주인공 아이가 자기 같다고 떠들썩하던 교실이 조용해졌다. “제발 저 소리 좀 멈췄으면….” 간절히 기도했다고 엄마가 시계로 변해버릴 줄이야!


교실에 감돌던 긴장은, 시계 병원 할머니가 말한 ‘시계탕’에 도착해서야 스르르 풀어졌다. 시계탕으로 가는 여정이, 긴장으로만 가득했던 건 아니다. 킥보드에 시계 엄마를 태우고 바람을 가르며 나아갈 때, 분홍 뱀을 발견했을 때, 우리 집에도 있어 반가운 접이식 카트에 엄마를 넣고 시계탕으로 출발할 때 아이들 얼굴엔 흥분과 설렘도 스쳤다. 으스스하고 오싹한 동굴 안에서 시계 엄마 눈빛이 레이저빔처럼 솟아나 어둠과 공포를 쏘아댈 때는 잠깐이나마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교실이 다시 시끌벅적해진 건 시계탕 다녀온 다음 날 아침 장면.

엄마가 돌아왔어요! 엄마 옷 색깔이 시계 색깔이랑 똑같아요! 저기, 달팽이 기어간다!

안도의 숨과 함께 터져 나온 목소리엔 기쁨이 묻어났다. 책을 보기 전보다 크고 높아진 목소리 기운에, 살며시 미소 짓는 주인공 아이의 얼굴이 포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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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 세계 어른에게 시계는 없어선 안 되는 필수품이다. 정해진 시간 안에 해야 할 일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제때 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어그러질 것만 같은 불안과 조바심이 쉬지 않고 재깍거린다. 그래서 쫓기게 된다. 아이를 다그치게 된다. 이런 어른에게 『시계탕』은 ‘잠시, 멈춤’의 시간을 안겨준다. 돌봄의 역전이 일어나는 시공간을 새롭게 보여준다. 정해진 테두리에 갇히지 않은, 다른 시간을 사는 아이는 엄마가 멈추자 일단 움직인다.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한다. 그리고 엄마를 기다려준다. 그렇게 자람의 시간을 누린다. 그러니 괜찮다고, 잠시 쉬어가도 큰일 나지 않는다고 마음을 도닥인다. 『시계탕』은 ‘아기와 함께 태어나는 신생 인류’, ‘엄마’에 주목했던 『엄마 도감』 권정민 작가의 신작이다. 전작에서처럼 맨 마지막 작가의 말엔 위로와 응원이 담겨있다.


아이와 어른이 나란히 앉아 『시계탕』 펼치고, 숨은그림찾기 하듯 그림 속 요모조모를 찾아내고 이야기하며 시계탕 여행 즐기는 순간을 상상해 본다. 눈빛 주고받으며 속마음 꺼내놓고 서로를 보듬는 찰나를…. 책을 덮고 난 다음에도 아이와 시계탕 여행 누릴 수 있지 않을까. 덕분에 불안한 이 세상을, 서로 돌보고 함께 자라나며 더 많이 사랑하면서 살아갈 수 있다면 좋겠다.


이숙현_전 구미 금오유치원 원장, 『그림책이 마음을 불러올 때』 저자


-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25년 5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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