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현 글·그림 / 56쪽 / 16,800원 / 사계절
‘레스토랑 핑크’는 욕망을 마음껏 분출하는 공간이다. 그곳은 정해진 메뉴가 없으며 완벽한 식사를 위한 곳으로 설정되어 있다. 손님들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음식을 주문한다. 주문서에는 그동안 결핍을 느낀 무언가를 적고 욕망을 담는다. 하지만 자신이 주문한 대로 음식을 먹는 손님은 강박적인 행동을 보이거나 식사 예절이 없고 음식에 집착하는 태도를 보인다. 일부 손님은 우월감에 취해 음식을 주문하고, 먹어보지도 않고 무슨 맛인지 알 것 같다는 투정 섞인 말을 한다. 저마다의 욕망이 투영된 식사를 하고 있지만, 정작 만족하지 못하고 불안을 떨쳐내지 못한다. 누구도 기쁨을 누리거나 즐기는 모습이 아니다.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손님은 혼자서 레스토랑의 모든 코스 요리를 주문한다. 가능한 모든 맛을 알기 위해 코스 요리를 먹지만 정작 먹었던 음식 맛은 기억하지 못한다. 또 다른 손님은 스트로베리로 만들어진 음식을 몽땅 주문했다. 손님은 탁자 위에 가득 놓인 케이크를 먹고 있지만,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케이크는 의미 있고 축하하는 날에 사람들과 나누어 먹는 음식이다. 그러나 혼자 먹는 손님의 모습에서 소통의 부재와 정서적 결핍이 느껴진다.
아이와 동반한 가족은 양갈비 세트 3인분을 시키며 아기 의자를 사양한다. 부모는 우유병을 든 아이에게 음식을 먹는 경험이 빠를수록 좋다며 양갈비를 먹인다. 아이의 치아가 제대로 나지 않은 상태에서 음식물을 씹고, 소화를 시킬 수 있을지 걱정된다. 음식을 씹고 삼키는 과정은 아이의 성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경험이다. 하지만 부모는 다른 이보다 빨리 경험시킨다는 욕심에 아이가 거쳐야 할 단계를 건너뛴다. 부모의 욕망이 담긴 주문대로 먹고 자란 아이는 마음의 허기를 채울 수 없을 것이다. 레스토랑 핑크에 찾아온 또 다른 손님은 12인석에 혼자 앉아 브런치를 먹으며 앞이 트여 좋다고 말하고, 다른 손님은 프라이빗 VIP 코스를 즐기지만, 씹는 게 귀찮다는 이유로 웨이터들이 넣어주는 음식을 입만 벌려 삼키고 있다. 그들이 원하는 최고급 서비스는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음식은 인간의 생명을 유지하게 하고 인간에게 먹는 기쁨을 준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과 관계를 형성하고 유대감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함께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타인과 감정을 나누고 정서 교류에 의미가 있다. 레스토랑 핑크에 찾아온 손님들은 음식을 통해 욕망을 충족시키고 싶었지만, 만족한 손님은 없어 보인다. 아무도 행복한 식사를 하지 못했다. 그곳은 욕망에 과도하게 사로잡혀 몸과 마음의 회복을 거둘 수 없었다. 결국 손님들은 공허한 상태로 레스토랑 핑크를 빠져나간다. 그들이 다시 레스토랑 핑크에 찾아온다면 건강하고 긍정적인 욕망의 주문서를 쓸 수 있을까?
손미영_아동청소년문학 연구자, 『그림책이 세상을 물들일 때』 공저자
-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25년 7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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