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 표현에 대한 책을 쓴 후로 달라진 게 있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그때마다 “내가 쓰는 어휘의 근원과 문장의 맥락, 즉 내 ‘표현의 세계’를 유심히 들여다보게 됐다”고 대답한다. 사실이다. 내가 무심코 쓴 그 표현은 어디서 온 건지, 나는 어떤 맥락으로 그 말을 한 것인지 곱씹다 보면 내 세계, 나아가 내가 속한 사회의 한계와 모순이 드러난다. 그때의 깨달음이야말로 값진 공부다.
최근에 읽은 두 권의 책은 표현의 세계에 관한 공부가 중요함을 더욱더 일깨워줬다. 『평범한 말들의 편 가르기, 차별의 말들』(태지원 지음 / 앤의서재)과 『단어가 품은 세계』(황선엽 지음 / 빛의서가)다. 각각 사회, 언어 교양서 분야의 책인데 모두 우리 일상 속 어휘나 표현의 맥락을 낯설게 보도록 도와준다.
정상, 등급, 완벽, 가난, 권리, 노력, 자존감, 공감. 참 평범한 단어들이다. 『평범한 말들의 편 가르기, 차별의 말들』은 이처럼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여덟 개 단어를 중심으로 하는 여러 표현 속에서 고정관념, 편견의 틈을 발견한다. 우리가 무심코 툭 내뱉는 말들이 어디서 왔고, 어떻게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가르는지, 이 화살 같은 말들이 누구를 향하는지 등을 살펴보는 책이다. 『이 장면, 나만 불편한가요?』를 통해 미디어 속의 차별과 혐오 요소를 살펴본 태지원 작가는 이 책에서도 아주 설득력 있게 표현의 문제와 그것의 사회적 함의를 비판적으로 살폈다.
우린 종종 제멋대로 ‘정상’이란 기준을 정해두고, “정상에 들어야 해!”라고 암묵적으로 강요하는 말을 하곤 한다. “결혼은 언제 하셨어요?” “아이가 몇 명인가요?” 툭 던지는 이런 말들에 비혼이나 무자녀의 삶을 선택한 이들의 삶은 순식간에 ‘비정상’이 된다. “그래도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야 사람이 철든다.” “아빠(엄마)가 있어야 애가 제대로 큰다.”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에서 비롯된 이런 말들은 언어의 세계를 넘어 각종 차별을 낳는다. 한부모 가족을 이유로 차별적 시선을 견디거나 1인 가구나 동거 가족이라는 이유로 법, 제도적 측면에서 불이익을 감당하는 이들이 존재한다. 저자의 이야기를 통해 나 역시 세상의 중심을 정해두고, 장벽을 쌓는 말을 하진 않았나 되돌아보게 된다.
‘서성한 중경외시….’ 마치 ‘태정태세문단세’처럼 사람들 입에 착 붙어버린 대학 서열 그리고 ‘듣보잡’(지방대를 비하하는 용어) 등의 표현에 담긴 한국 사회의 ‘등급 매기기’ 문화를 살펴본 ‘등급’ 챕터도 흥미롭다. 저자는 대학뿐 아니라 부동산, 결혼, 직업 등 우리 삶의 면면에 뿌리내린 등급 매기기의 기원을 쫓으며 한민족으로 좁은 땅에서 아옹다옹 살아온 한국인의 비교 본능 그리고 개인보단 집단을 중시한 유교 사상 등 원인으로 얘기되는 다양한 역사적·사회적 배경을 소개한다. 과열된 등급 매기기 문화에서 탄생한 표현들의 바탕에는 ‘성공하지 않은 사람은 모두 실패한 사람, 대기업이나 공기업, 정규직이 아니면 실패한 인생’이라는 사고방식이 있다. 저자는 각자에게 맞는 삶의 방식과 행복이 존재한다며 수전 케인의 『콰이어트』 속 문장을 언급한다.
‘자존감’ 챕터는 유독 무릎을 치게 만든다. “자존감을 길러야죠!” “제 자존감이 낮아서 그래요.” 저자는 이른바 ‘자존감 대열풍’ 시대를 경험하며 우리가 모든 문제를 개인의 자존감 문제로 치환하고 있는 건 아닌지 묻는다. 자존감이 만능 치트키인지, 자존감이라는 말 아래 상황의 다양한 면면이 묻히는 건 아닌지 경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단어가 품은 세계』는 우리가 일상에서 많이 쓰는 단어의 뜻과 기원을 알아보며 인류의 역사와 변화, 세태의 변천 등을 살펴본다.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황선엽 교수가 쓴 일종의 ‘단어 탐구 여행’이다. “경험의 폭이 넓을수록 이해할 수 있는 세계도 넓어집니다. 단어의 세계를 아는 일도 우리가 사는 세상을 이해하는 일일 것입니다”라는 저자의 말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케첩’이 중국어에서, ‘키오스크’가 페르시아어에서 유래했다는 일화부터 ‘얼룩백이 황소’가 ‘젖소’ 또는 ‘누런 소’가 아닌 ‘수소 칡소’(참고로 ‘황소’는 ‘다 성장한 수소’를, ‘얼룩백이’는 호랑이처럼 줄무늬를 가진 소인 ‘칡소’를 의미함)를 뜻한다는 사실까지. 책에는 단어를 둘러싼 정보가 가득하다.
“언어는 그 시대 인권 감수성을 반영해야 한다”는 언급도 눈에 띈다. 저자는 식물 이름 중 ‘며느리밥풀꽃’ ‘며느리밑씻개’의 의미를 알려주며 비속하거나 현대 상황과는 맞지 않는 건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며느리밥풀꽃은 며느리가 밥이 잘 됐는지 알아보려고 밥알 몇 개를 맛보다가 시어머니에게 맞아 죽은 후 그 무덤에서 붉은 입술에 밥풀을 머금은 듯한 꽃이 피어나서 붙여진 이름. 며느리밑씻개는 줄기에 갈고리모양의 가시가 잔뜩 박혀있는 식물로, 그 잎으로는 변을 본 후 밑을 씻을 수 없다. 며느리에 대한 당시의 인식이 드러난, 참 끔찍한 작명이다.
한쪽 눈이 먼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애꾸눈이’, 한쪽 다리가 짧거나 다쳐서 걷거나 뛸 때 몸이 한쪽으로 자꾸 거볍게 기우뚱거리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절뚝발이’와 ‘절름발이’ 등은 사전에 실을 수는 있으나 규범의 예시에선 빠져야 할 단어들이다. 저자는 “인권 감수성이나 성 인지 감수성에 대한 인식이 없었던 시절에 만들어진 것들이니 이 규범에 대한 전면 수정이나 개정이 필요한 게 당연합니다”라고 말한다.
‘마약 김밥’ ‘마약 떡볶이’. 흔한 표현이라 뭐가 문제인지 잘 보이지 않는다. 저자는 불온시되던 ‘마약’이란 단어가 음식 이름에 붙으면서 ‘맛있는’이란 긍정의 의미로 쓰이게 됐음을 걱정한다.
‘그 말은 어디서, 어떻게 시작된 걸까?’ 두 책을 벗 삼아 일상을, 표현을 낯설게 바라보자. 표현의 세계를 넘어 생각의 깊이와 넓이가 달라지는 경험을 해볼 수 있을 것이다.
김청연_작가, 『왜요, 그 말이 어때서요?』 저자
-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5년 8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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