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들려주는 그림책 이야기
문지나 글·그림 / 52쪽 / 16,800원 / 문학동네
인생을 살면서 우리는 기쁘고 행복하거나 때로는 슬프고 괴로운 수많은 일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반짝반짝 빛나는 소중한 순간들을 떠올리자면, 아주 어린 시절의 기억부터 더듬어가야 할 것 같아요. 저는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는 맞벌이하시는 부모님 때문에 외가댁에서 자랐어요. 그곳은 시골이어서 어린 마음에 무척 심심하기도 하고, 부모님이 보고 싶기도 했던 것 같아요. 밤이 되면 집 주변이 온통 깜깜해졌는데, 논밭 너머 저 멀리에서 불빛들이 깜빡거렸어요. 그 불빛들이 무척 신비롭게 느껴져서 ‘저곳은 어떤 곳이고, 누가 살고 있을까?’ 하고 상상의 나래를 펼쳤던 기억이 나요. 또 여름에 옥수수를 따서 쪄주시던 할머니의 다정하고 새하얀 머리카락, 겨울이 되면 썰매를 타고 놀던 꽁꽁 얼어붙은 논밭도 떠올라요.
초등학생이 되어서는 부모님과 함께 살게 되었는데, 그때는 동네 친구들과 해가 질 때까지 골목을 뛰어다니면서 놀았어요. 봄마다 낮은 담장 너머로 아카시아 향기가 일렁이던 동네였지요. 한번은 온 가족이 차를 타고 서울에 사는 친척 집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는데요. 서울 지리를 잘 모르셨던 아버지는 몇 시간 동안 서울 시내를 뺑뺑 돌았어요. 그때는 내비게이션도 없고, 오직 지도책을 보면서 운전을 하던 시절이었거든요. 그러다가 겨우 서울을 벗어나서 한밤중에 우리 동네에 도착했을 때, 마침 벚꽃이 만개해서 꽃잎들이 가로등 불빛 속에서 은종이처럼 춤을 추며 내려오고 있었어요. 온종일 지쳐있던 우리는 홀린 듯이 차에서 내려서 벚꽃을 구경했어요. 제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벚꽃들이었지요. 여름에 바다에 놀러 가면 뜨겁게 달궈진 하얀 모래들, 햇살에 빛나던 물결, 그 위를 둥둥 떠다니던 투명한 튜브, 꽃 모양 장식들이 잔뜩 달려있던 수영모자, 주변에서 들려오던 웃음소리까지 온 세상이 눈부시게 느껴졌어요.
또 이번 그림책을 작업할 때 큰 도움을 준 사람은 바로 저희 아이였어요. 아이가 어릴 때부터 길에서 돌멩이나 나무 열매, 나뭇잎 등을 보면 눈을 반짝반짝 빛내면서 주워오곤 했는데요. 이 그림책에 나오는 돌멩이를 줍거나 종이학을 접는 아이들은 제 아이의 모습이기도 하고 제 어린 시절 모습이기도 해요. 그리고 아마도 이 책을 읽는 아이들과 그 부모님의 어린 시절 모습이기도 하겠지요.
초기 그림책 더미에서는 일 년 동안의 이야기를 그렸었는데, 편집자와 상의 후 배경을 여름부터 가을 초까지로 좀더 짧게 수정했어요. 그리고 이야기 중간 부분은 여자아이와 남자아이의 일상이 교차되면서, 마치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처럼 하자고 의견을 나누었어요. 남자아이는 여자아이가 선물한 종이학을 마음속에 담고, 자신에게 소중한 것을 여자아이에게 주고 싶은 마음이 자라나면서 성장하는 과정을 담고 싶었답니다.
채색 작업을 할 때는 오일파스텔과 색연필을 사용했어요. 색연필로 먼저 대략의 색들을 배치하고 넓은 면이나 힘을 주고 싶은 부분은 오일파스텔로 칠하고요. 그 외의 세밀한 묘사는 색연필로 채운 후 면봉으로 좀더 부드럽게 색들을 섞어주었어요. 최종 수정은 아크릴물감을 사용했어요. 그림을 다 완성한 후에 글을 수정했는데요. 편집자가 마지막 하이라이트 장면은 앞부분과는 다르게 글에서 변주를 주면 좋겠다고 해서 좀더 길게 감정을 서술하는 문장으로 마무리하게 되었어요.
이 책을 작업하면서, 어른이 된 나는 그동안 얼마나 바쁘고 각박하게 일상을 스쳐 지나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되었어요. 잠시 멈춰서 내 마음속을 들여다보니 그곳에는 소중한 추억들이 변함없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는 사실도 깨달았지요. 그 반짝임은 화려하기보다는, 우리 가까이에 있는 작고 사소하지만 따스한 빛이라는 것도요. 이 책을 읽는 독자들도 이와 같은 따뜻한 응원과 격려를 받으면 좋겠습니다.
문지나_그림책작가, 『반짝반짝』 저자
-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25년 9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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