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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K-문학 꽃피운 책거리 10년

by 행복한독서


결국 다 좋아서 하는 거잖아요

김승복 지음 / 264쪽 / 17,500원 / 달



자신이 좋아서 하는 일을 직업으로 가진 사람은 얼핏 생각하면 행운아라 할 수 있다. 주변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기도 한다. 나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이면서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선택했고 다행히 운이 따라줘 오랫동안 그 일을 하며 살고 있다. 그렇지만 좋아하는 일을 한다고 어려움이 없을 수는 없다. 어쩌면 당연한 얘기지만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보다 힘겨운 일이 훨씬 많은 편이다. 그저 오롯이 자신의 선택이었기에 책임감을 갖고 어려움들을 헤쳐가며 혼신을 다해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 상황을 잘 알기에 이 책의 제목이 남다르게 다가왔다.


『결국 다 좋아서 하는 거잖아요』는 고서점 150여 곳이 모여있는 책방거리인 도쿄의 진보초(神保町)에서 일본 내 유일한 한국어 책방인 ‘책거리’를 10년째 운영하는 김승복 대표의 분투기이다. 출판사에서 이 책의 발간일을 책거리 10주년에 딱 맞췄다. 10년 전인 2015년 7월 7일, 저자는 “재밌는 한국문학을 일본사람들도 봐줬으면” 하는 마음 하나로 책거리를 시작했다. 현재 책거리에는 3,500여 권의 한국어 원서와 일본어로 쓰인 500여 권의 한국 관련 책을 판매 중이다. 생각해 보면 2015년 이전에는 가장 가까운 이웃 나라인 일본에 한국 책을 살 수 있는 책방이 하나도 없었다는 사실이 더 놀랍다. 저자의 결단이 아니었다면 그 시기가 훨씬 늦춰졌을 것이다.

동네1-쿠온이 만든 책과 『토지』 일본어판.jpg 쿠온이 만든 책과 『토지』 일본어판

저자는 책거리를 열기 8년 전부터 이미 일본에서 쿠온(CUON)이라는 출판 에이전시와 출판사를 운영하며 한국문학을 앞장서서 일본에 전파하고 있었다. 박경리 작가의 『토지』 일본어판을 10년에 걸친 번역 작업 끝에 완역해 총 20권짜리 시리즈로 냈고,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기 몇 년 전에 『채식주의자』를 번역본으로 출간해 일본 독자들에게 먼저 소개하기도 했다. 출판 에이전시와 출판사를 운영하면서 한국 책을 파는 책방까지 하는 것도 벅찰 일일 텐데 여기에 더해 매해 상당히 큰 규모의 ‘K-BOOK 페스티벌’을 개최하고 있으니 그 열정과 추진력에 연신 감탄하며 책을 읽었다.

동네1-소년이 온다,채식주의자 일본어판 표지.jpg 『소년이 온다』 『채식주의자』 일본어판 표지

김 대표는 현재 책거리에서 3일에 한 번꼴로 책 관련 행사를 열고, 쿠온 출판사와 쿠온 에이전시에서는 K-BOOK 페스티벌뿐만 아니라 번역 세미나도 수시로 열고, 일본 출판사들을 불러 한국의 좋은 책들을 소개하는 설명회도 연다. 이런 일들은 모두 저자가 계속해서 책을 만들고 팔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몇 년 전 어린이책 관계자들과 함께 일본 그림책 도서관과 책방 견학을 갔을 때 책거리에 들른 적이 있었다. 진보초에 한국 책을 파는 책방이 있다는 자체가 감격스러운 일이었다. 책방에 손님들이 많아 무척 반가웠던 기억이 난다. 당시 김승복 대표가 없어 궁금한 점들을 못 물어봤는데 이 책을 통해 궁금증이 많이 해소되었다.솔직히 책을 읽는 내내 어떻게 이 많은 일을 벌일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계속했다. 나도 한때는 겁 없이 일을 잘 벌이는 사람 중 하나였지만 저자는 나와 차원이 다르다. 이런 일은 개인이 아니라 국가적으로 해야 할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많이 들었다. 앞으로 최소한 매년 열리는 K-BOOK 페스티벌에 정부에서 예산 지원을 하면 좋겠다.

동네1-K-BOOK 페스티벌.jpg K-BOOK 페스티벌

책은 저자가 18년 전부터 동분서주하며 일하면서 인연을 맺은 사람들을 한 사람씩 소개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에피소드들이 무척 흥미로운데 그 가운데에는 가슴 뭉클한 이야기들이 많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토지』 일본어판의 북디자이너 가쓰라가와 준 씨와 함께 만든 『토지』 디자인 이야기, 함께 술을 마시다 갑자기 자세를 바르게 고쳐 앉고 운영이 힘들 때 언제든지 연락하면 300만 엔까지 도와줄 수 있다고 얘기해 준 하타노 세쓰코 씨, K-BOOK 페스티벌 장소인 출판클럽빌딩의 대관비를 해결할 수 있도록 배려해 준 쇼가쿠칸(小学館)의 오가 마사히로 대표, 저자의 생일을 맞아 생일 선물로 다량의 책을 구입한 요코다 구미 씨 이야기들을 인상적으로 읽었다.


이렇게 책을 읽으면서 한국이나 일본이나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선하고, 책으로 맺은 인연들이 참으로 소중함을 다시 확인할 수 있어 좋았다. 그런 선한 사람들이 연대하며 함께한 것이 저자가 18년 넘게 지치지 않고 이 일을 해올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일 듯싶다.


김승복 대표님, 그동안 애써주셔서 고맙습니다. 건강해야 오래 하실 수 있으니 앞으로는 몸도 챙기시면서 쉬엄쉬엄하세요.


한상수_행복한아침독서 대표, 『나는 책나무를 심는다』 저자


-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5년 9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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