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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과 사회, 글쓰기에 관한 섬세한 성찰

by 행복한독서


어쩌다 마트 일을 시작하게 됐어요?

하현 지음 / 268쪽 / 17,800원 / 위즈덤하우스



아이가 태어난 이후에는, 육아의 절반을 마트에서 했다고 해도 크게 과장은 아니다. 마트에는 아이를 위한 온갖 문화 프로그램이 가득하고, 유아 휴게실이 완비되어 있고, 식당에서 아이를 배척하지 않고, 아이 울음소리도 당연하다. 육아 시절, 그곳은 그야말로 ‘환대의 공간’이었다. 도시에서 이런 곳을 찾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암묵적이고 명시적인 노키즈존이 넘쳐나는 이 개인주의 도시에서, 마트만큼은 아이들을 온 마음으로 껴안기로 작정한 공간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어쩌다 마트 일을 시작하게 됐어요?』에는 마트가 “최고의 예스키즈존”이라는 대목이 나온다. 이 부분을 보자마자 책에 대한 친밀감이 확 높아졌다. 이 책은 작가가 20대부터 30대까지 10년 넘게 마트 일을 하며 기록한 ‘마트 관찰기’이자, 동시에 청춘의 자아 정체성을 찾는 ‘정체성’ 이야기이기도 하다.


“생활형 아이들은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돌봐줄 사람이 없어서 마트에 온다. 때때로 마트는 갑작스럽게 생긴 돌봄 공백을 메꿀 방법이 없는 가정을 위한 긴급 돌봄 시설이 되기도 한다.” (58쪽)


작가는 마트에서 일하며, 마트가 속한 위치를 정확한 맥락에서 바라본다. 내가 마트에서 느낀 ‘환대’가 주관적인 경험만은 아니었던 셈이다. 그곳은 작가의 말대로 때론 ‘긴급 돌봄 시설’이 된다. 아이들도 아무 문턱 없이 입장하여 시식 코너에서 음식을 받아먹고, 싼 가격에 아이스크림 가게나 푸드 코트에서 시간을 때운다. 마트는 일종의 복지시설 역할을 하고, 그 최전선에서는 마트 직원들이 있다. 그런데 그 ‘직원들’은 의외로 ‘마트 소속 정규직’이 아니라 마트에 ‘파견된’ 사람들이다.


“매장을 방문하는 고객과 가장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 사람은 마트 소속 직원이 아닌 파견업체 직원들이다. 정규직은 너무 적고, 그래서 늘 고객의 시야에 보이지 않고, 결국 각종 문의와 요구에 즉각적으로 대응하는 건 행사 직원들의 몫이다.” (69~70쪽)


이처럼 매장에서 실질적인 역할을 하는 파견업체 직원들에 대해, 작가는 “계약직도 파견업체 소속도 모두 소중한 구성원”으로 존중받길 바라는 마음을 담는다. 작가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마트라는 공간이 하나의 거대한 공동체이고, 모두가 협력하여 더 나은 ‘우주’를 만들고자 애쓰는 그 현장에서 굳이 계급과 차별이 필요한가를 진지하게 묻게 된다. 이는 마치 우리 사회 전체에 대한 비유 같기도 하다. 서로의 등급을 나누어 위아래를 가르는 것보다 공동체에 필요한 건 그저 서로를 환대하고, 그 환대 속에서 온전한 존중을 누리는 것이 더 중요한 게 아닌가 하고 말이다.


작가는 마트에서 젊은 날에 일하는 것이 ‘미래가 없는 건’ 아닌지 스스로 묻기도 하면서, 동시에 사회적인 차별적 시선과 싸우기도 한다. 마트에서 번 돈으로 생계를 해결하고, 글을 쓰는 작가로 살면서 노동의 의미에 대해서도 사뭇 진지한 성찰을 이어간다.


책을 덮고 나니, 한 사람의 값진 여정을 솔직한 고백 속에서 섬세하게 들여다본 것 같았다. 분명한 건, 이 책을 읽기 전과 후에 마트가 똑같이 보일 수 없다는 점이다. 나아가 우리 사회의 모든 노동과 직업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그 고민을 관통하면서도 꿋꿋이 나아가는 작가의 글쓰기에 왠지 모를 고마움을 느낀다.


정지우_작가, 변호사, 『사람을 남기는 사람』 저자


-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5년 9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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