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으로 배우는 성인지 감수성
황인찬 지음 / 이명애 그림 / 48쪽 / 15,000원 / 봄볕
아침에 눈을 뜨고 난 후 ‘모닝 루틴’이 있으신가요? 따뜻한 물 한 잔, 커튼 열기, 기지개 켜기 등 각자 다를 것 같습니다. 저는 일어나자마자 욕실로 가서 칫솔질을 합니다. 어느 날, 평소와 마찬가지로 이를 닦으며 거울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어제 저녁을 짜게 먹어서인가, 퉁퉁 부은 모습이 참 못났네.’ 흠칫 놀랐습니다. 저를 향한 그날의 첫 문장이 혼자만의 고요한 평화를 깬 외모 평가라니요. 저는 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자주 스스로를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살거든요. 그런데 아침부터 이 혹독한 지적질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요.
꼬마 소리를 듣던 시절, 오랜만에 만난 친척들이나 어른들이 저에게 공통적으로 하시던 말이 기억납니다.
검지와 중지를 이용해 빨래집게로 옷을 잡듯 제 코를 쥐고 흔들던 불편함 때문이었을까요. 아주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생생한 기억입니다. 거기서 끝나면 다행이었을 텐데.
이런 문장도 자주 들었습니다. 당시에는 ‘여자애들은 얼굴 예쁜 게 고시 패스다’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었으니 어른들은 저를 진심으로 걱정하신 거였겠죠.
학생 때 여자인 친구들끼리 모여서도 얼굴을 뽀얗게 표현하는 법, 좋은 화장품 고르는 법 등이 대화 주제 중 하나였으니 외모 평가로부터 자유로웠던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성인이 되었을 때 달려간 곳은 어디였을까요? 살 빼는 약을 준다는 내과와 수술을 잘한다는 성형외과였습니다.
이제는 시간이 많이 흘러 외모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건강과 편안함을 추구하는 삶을 살고 있어요. 그런데도 거울 속 저를 보며 튀어나온 평가는 왜 아직도 현재 진행형일까요. 아마도 미디어와 광고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보는 미디어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공들인 치장을 하고 아주 센 조명 아래에 있는 이들이 등장합니다. 주름도 모공도 보이지 않고 깔끔한 모습이 프로다워 보이죠. 보여지는 직업을 가진 사람과 평범한 사람의 삶은 너무나 다른데도 우리는 그들을 머릿속으로 데려옵니다. 방금 스마트폰 영상에서 본 유명인의 얼굴과 같은 스마트폰 셀프카메라 안의 내 모습은 많이 다르니까요. 옥외 광고판, 대중교통에 걸려있는 이미지, 번화가의 LED에서도 비현실적인 모습은 계속해서 나옵니다. 코가 예쁘지 않았던 어린이는 어른이 되어도 이처럼 외모 지상주의 세뇌 속에 살고 있습니다.
남의 외모에 대해 쉽게 말하는 문화도 한몫합니다. ‘피곤해 보인다’ ‘살이 빠졌다’ ‘피부가 좋아졌다’ 등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에 유독 집착합니다. 반면 ‘참을성이 더 많아졌네’ ‘못 보던 사이에 더 말을 예쁘게 한다’ 같은 칭찬은 잘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예쁘다’라는 칭찬을 좋아하는 편인데요. 교사로 일할 때 학생들에게도 예쁘다고 칭찬을 하면
하고 반응하는 남학생들이 있었습니다.
라고 설명해 주었지만 완전히 받아들여지지 않는 느낌이었어요. 얼마 전에 비슷한 주제의 영상을 보았어요. 한 남성 유명인이 귀엽다는 칭찬을 듣고는 불편해하는 기색을 비치는 거예요. 귀엽다는 건 칭찬인데 맘에 안 드냐고 옆의 출연자가 설명하자 ‘남자답다’ ‘잘생겼다’가 더 좋은 칭찬처럼 느껴진다고 말하더군요. 평가의 언어에도 차이가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내가 예쁘다고?』에 등장하는 주인공 ‘나’는 예쁘다는 언어에 편견이 없습니다. 짝꿍 김경희가 내 쪽을 보고 “되게 예쁘다”라고 말한 것을 들은 순간부터 가슴이 콩닥거리기 시작하거든요. 그것도 수업 시간 중간에 내뱉은 말이니, 얼마나 대단한 칭찬으로 느껴졌을까요! 빡빡 깎은 짧은 머리의 주인공은 거울을 한참이나 봅니다. 자세히 보니 코도 예쁜 것 같고 눈도 예쁘거든요. 급식을 먹다가도 운동장에서 놀다가도 주인공은 자꾸만 멈칫합니다. 예쁘다는 김경희의 말이 자꾸 떠오르거든요. 가만가만 나를 관찰할수록 더 예쁘게 느껴지는 느낌 덕분에 주인공은 일상을 들뜬 마음으로 보냅니다.
‘예쁘다’를 여성을 칭찬하는 상황에만 쓰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는 언어에 성별 고정관념의 그림자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여성 그리고 외모에 대해 평가할 때만 ‘예쁘다’를 쓴다면 너무 안타까운 일이죠. 그러한 오해를 없애주는 사랑스러운 그림책이 『내가 예쁘다고?』입니다. 예쁘다는 형용사는 정말 다양한 경우에 쓸 수 있는 말이니까요. 그림책에 등장하는 예쁜 순간 중 우리가 잊고 살았던 장면은 무엇일까요? 김경희가 무엇을 보고 진심으로 감탄했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이미 예쁜 것들로 가득합니다.
따뜻한 색으로 채운 그림책을 함께 보며 인간이 꾸며낸 미의 기준이나 외모 평가 말고 진정한 ‘예쁨’에 대해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자연에서 가장 예쁜 색깔을 골라보세요. 내가 좋아하는 책 속에서 예쁜 문장을 찾아보세요. 상대방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는 예쁜 말 한마디를 떠올려주세요. 관심 없던 사람의 예쁜 구석을 찾아보세요. 그리고 오늘 하루를 잘 버텨낸 나 자신을 예뻐해 주세요. ‘예쁘다 예쁘다’ 스스로를 쓰다듬어 주세요.
서현주_전 초등교사, 폭력예방교육전문강사, 『오늘의 어린이책 1, 2, 3, 4』 공저자
-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26년 2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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