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워북클럽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책방에서 고전읽기

by 행복한독서

제법 어둑해진 금요일 저녁 7시 30분, 닫힌 줄 알았던 동네책방에 따스한 빛이 켜집니다. 하나둘씩 어린 손님들이 찾아오더니 이내 두 탁자를 이어 붙인 자리가 가득 찹니다. 그런데 이 손님들 복장이 어딘가 수상합니다. 레이스 달린 드레스 차림의 아이 셋, 신사 양복을 입은 아이 둘, 챙이 넓은 모자를 쓴 어린이 둘. 곧 긴 드레스 차림의 한 어른이 제법 우아한 채 걸어와 장미꽃을 건네며 이렇게 말을 건넵니다.


“얘들아, 앞으로 너희가 얼마나 오래 살든, 늘 오늘처럼만 행복하면 더 바랄 게 없겠구나!” (『작은 아씨들』 마지막 대사를 일부 바꾼 말)


이 한마디에 까르르 웃음소리가 펴지고, 곧 모두가 『작은 아씨들』을 꺼내 책상 위에 올립니다. 장장 948쪽에 달하는 이 고전을 함께 완독한 것을 기념하는 ‘고마워 북파티’가 시작되는 순간입니다!


꿈틀책방 운양점에서 매주 금요일 밤 열리는 ‘고마워북클럽’에서는 동화 같은 풍경이 끊이지 않습니다. 우선 초등학생이 동네책방에 모여 함께 두꺼운 고전문학을 읽는다는 것부터가 그저 놀랍고 생경한 일이지요. 이 일이 벌써 4년째 이어지고 있다는 것도요. 네 명으로 시작한 북클럽은 이제 정원을 꽉 채우며, 함께 고전 읽기를 축제처럼 즐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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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북클럽은 “고전이 마구마구 가까워지는” 어린이 북클럽입니다. 문학을 사랑하는 독자이자 어린이 교육자인 제가 ‘이런 일이라면 인생을 걸어도 좋지 않을까?’라는 마음으로 시작한 프로젝트지요. 적어도 내가 만나는 어린이들만큼은 일찌감치 고전문학 읽기의 본질적인 즐거움을 경험하도록 돕고 싶었거든요.


고전문학을 읽는 것은 호흡이 긴 여정입니다. 읽고, 함께 소통하고, 때론 써보는 순환이 천천히 반복됩니다. 그런데 학창 시절을 돌아보니, 이걸 패키지 여행하듯 초고속으로 경험했더군요. 너무나 많은 문학 텍스트가 토막토막 난 채로 수능이라는 상자 속에 갇혀 있었거든요. 맛만 보는 셈 치고 구경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어김없이 정답을 찾아내야 할 때면 무척 난감했던 것 같습니다.


사실 문학을 읽는다는 건, 종착역이 정해지지 않은 기차에 올라타는 모험에 가깝습니다. 이야기가 뻗어나간 세계 속으로 날아가 낯선 시공간과 존재들을 마주하려면 유연한 태도가 필요하죠. 호기심을 가지고 천천히 들여다봐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볼 수도 느낄 수도 없거든요. 놀라운 건, 이 여정 끝에선 결국 어딘가 닿게 된다는 것입니다. 제 경우엔 대부분 ‘나는 누구일까, 어떻게 살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만났고요. 결국은 나만의 언어로 답해보고 싶다는 욕망을 느낀 채 뭔가를 끄적여 보는데요. 이 모든 과정은 속도가 더딜지라도 정답이 없어서 무한히 자유롭습니다.


각자의 방식으로 읽고 사유한 것들이 교차하는 독서모임은 어떤가요? 책을 읽고 타인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서로의 눈을 빌려 현재에 함께 머무를 수 있습니다. 세계를 다시 보게 되지요. 마치 같은 길을 걷고도 서로 다른 풍경을 기억하는 사람들과 앉아 그 시간을 펼쳐보는 일과 같습니다. 그래서 독서모임을 한 날은, 책 속에 갇혀있던 과거가 오늘의 언어로 살아나는 희열을 느끼곤 합니다. 이토록 신나고 멋진 모험을 어린이들에게도 선물해 주고 싶었습니다. 느리게 읽고, 함께 소통하고, 때론 써보기. 고마워북클럽을 열고 매달 한 권의 고전을 꼭꼭 씹어 읽으면서 가르치기보다 정답이 없는 질문을 건넸더니 정말 아이들의 마음과 생각이 활-짝 열리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고전은 어린이가 스스로 즐겁게 읽을 여지가 부족한 책이기도 합니다. 잘 써진 이야기가 그리 만만할 리가 있을까요. 어떻게 고전문학 독서에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는 ‘재미’를 한 스푼 더해줄 수 있을까요? 문득, 아이들이 본능적으로 가진 상상력의 힘을 자극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함께 놀고 싶은 ‘상상 친구’를 만들어주기로 한 것입니다.


『어린 왕자』 책을 품에 꼬옥 안고 나타나 같이 소리 내어 읽자고 조르고, 때론 『빨강머리 앤』처럼 폭풍 수다를 떨고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 속 동시를 노래 부르다 역사를 논합니다. 『80일간의 세계 일주』 속 필리어스 포그 씨가 이상형이라며 수줍게 팬레터를 쓰고, 어느 날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속 여왕 분장을 하고 나타나 ‘누가 내 타르트를 훔쳐 먹었냐?’며 다짜고짜 상황극을 시작하는 그런 엉뚱하고 재밌는 친구 말입니다.


어린이들 곁에서 고전문학을 무지 사랑하는 책 친구가 되어주는 일, 저의 가장 큰 역할이 바로 이것입니다. 부엉이 선생님은 고전 속 인물과 정서적으로 교감하며 문학 속 희로애락을 오감으로 즐기는 저의 분신이자, 아이들의 책 친구이죠. 어린 시절, 이런 독특한 어른을 만나는 경험을 통해 각자의 삶과 어우러지는 문학의 축복이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제게 동네책방은 진정성 있는 이야기를 차곡차곡 담기에 참 좋은 공간입니다. 동네책방은 존재만으로도 감동이 되는데요. 책 한 권을 팔아 무슨 대단한 이문이 남을까요. 온라인 주문만으로도 정가보다 할인된 책을 새벽 배송을 받을 수 있는 초고속 시대에 말입니다. 그래도 동네책방은 꿋꿋이 하루하루 불을 밝힙니다. 같이 책을 읽자고 사람들에게 다정하게 말을 건네면서요. 시시때때로 사람들을 모아 얼굴을 맞대고 소통하게 합니다. 책이라는 사색의 씨앗을 붙들고 말입니다. 저는 이런 동네책방의 일에 작은 물줄기 하나 덧댈 뿐입니다. 사람 냄새나는 곳, 소중한 우리 동네책방에 어린이의 웃음소리를 가득 담아주고 싶다는 마음으로요.


배현명(부엉이 선생님)_책방 코뿔소 강사


-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6년 2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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