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라일라’를 찾아서, 에바 린드스트룀

그림책의 창작자들

by 행복한독서

내가 에바 린드스트룀의 책을 정신 차리고 만난 건 겨우 4년 전의 일이다. 2022년 서울국제도서전에서 『돌아와, 라일라』를 발견했을 때였다. 2021년에 출간된 『모두 가 버리고』와 『나는 물이 싫어』를 읽고 즐거워한 기억은 있지만, 깊이 각인된 바는 없었다. 그런데 『돌아와, 라일라』는 단숨에 내 인생 두 번째 그림책으로 들어와 박혔다. 아이 같기도 하고 어른 같기도 한 여성 캐릭터가 내내 혼자서 강과 숲과 황무지와 높은 산을 헤매는 모습이 딱 나 같았다. 『부엉이와 보름달』(제인 욜런 글, 존 쉰헤르 그림)에서 눈 쌓인 겨울 숲속을 혼자 걷는 여자아이가 나 같아서 인생 첫 그림책으로 삼은 지 거의 30년 만에 새로운 자기 발견이었다.

그림6-에바.png ⓒ허숙영

『부엉이와 보름달』은 책 자체에 집중하게 했지만, 『돌아와, 라일라』는 작가를 탐구하고 싶게 만들었다. 그의 책들은 다양한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나는 물이 싫어』는 제목 그대로 싫어할 권리를 주장했다. 남들은 모두 이런 걸 좋아하니 같이 좋아해야 한다거나, 이런 부류의 사람은 이런 종류의 일 혹은 감정을 좋아한다는 고정관념을 퉁명스럽게 거부하는 이야기였다. 『걷는 사이』는 삶의 속도, 다른 속도와의 관계를 생각하게 했고, 『모두 가 버리고』는 한 인간을 둘러싼 고독과 슬픔과 소외를 그리면서도 거기에 지지 않는 우정과 화합과 기쁨도 제시하는 따뜻한 책이었다. 조건 없는 넓은 사랑을 말하는 『룬드와 큘란』이 있는가 하면 매우 위험해 보이는 관계인 존재들 사이의 아슬아슬하면서도 애절한 교류를 보여주는 『다리』도 있었다. 그렇게 폭넓고 철학적 깊이가 있고 다채로운 생각들은, 한결같이 천진한 아이 같은 그림과 무심한 듯 간결한 글에 담겨있었다. 아이 그림 같다고 했지만 내게 그것은 온갖 화풍을 섭렵한 피카소가 말년에 도달한 어떤 경지 같았고, 무심 간결해 보이는 글은 지긋하고 확고한 발걸음을 위트와 일종의 페이소스가 부드럽게 덮고 있다는 것이 내 감상이었다. 그렇게 그는 정말 흥미로운 작가였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작가 해외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선정돼 스톡홀름대학교를 향하게 되면서 나는 가능한 통로를 모두 동원해 에바 린드스트룀과의 인터뷰를 모색했다. 스톡홀름에서 일곱 시간 거리의 전원에 살며 일 년에 두어 번 움직인다는 정보, 알마상 수상 후 평론가 대담 영상은 그 길에 무거운 먹구름을 드리웠다. 에바는 요지부동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그가 인터뷰에서 거의 웃지 않는 얼굴로 가장 자주 한 대답은 “몰라”와 “아마도”였다. 인터뷰어만 (아마도 속으로) 진땀을 흘리며 말을 이어가는 것을 보고 나는 거의 포기 상태였다.


하지만 무슨 행운인지, 에바는 나의 메일에 즉시 답을 보내주었다. 마침 조카 손주의 세례식 참석차 스톡홀름에 올라간다며 자기 집으로 오라고 했다. “그게 여의치 않으면 네가 정하는 곳으로 내가 갈 수도 있어!” 여의치 않다니! 일곱 시간 걸리는 시골에도 갈 판이었는데! 나는 기뻐 날뛰며 약속 날 약속 장소로 나갔다. 그리고 무뚝뚝 뒤의 다정함, 무표정 뒤의 유머 감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약속 시간보다 15분이나 빨리, 혹시 내가 와 있을까 봐 나와 본 그는(나는 40분 전에 도착해 있었다) 차와 딸기와 치즈를 내놓았고, 한국 미출간작 중 소개하고 싶은 책을 보여달라는 청에 한 권을 뽑아와 전체를 영어로 번역하며 읽어준 뒤 선물로 건넸다. “당신 책을 보면서 생전 처음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케치북과 색연필을 사서 몇 장 베껴 그렸다”는 고백에 활짝 웃으며 격려를 해주었다. 거의 곁에서 떼놓지 않는다는 반려견 보쎄의 이름을 덴마크 드라마 「Follow the Money」 주인공 이름에서 따왔다기에 “그 제목 마음에 드네!” 했더니 “나도!” 맞장구치면서 씨익 웃던 장난꾸러기 얼굴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러나 자기 작품에 대한 장황한 분석을 간결하고 명확한 대응으로 압도하는 자세는 여전했다. 그의 앞에서 평론가 행세하며 해석을 더듬더듬 늘어놓는 나의 허세가 번번이 꺾이곤 한 것이다. 이런 식이다.


“『다리』에서 다리는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 이것은 카프카적 부조리의 세계인가?”

“아니, 다리는 없어. 늑대가 외로우니까 돼지를 더 머물게 하려고 거짓말한 거야.”


“당신 작품에는 베어 넘어진 나무가 자주 등장한다. 이것은 어떤 실존적인 위협 혹은 불안을 뜻하는가?”

“스웨덴 시골에서 흔히 보는 풍경이야.”


“라일라가 헤매던 자연에서 다리를 건너 도시로 올 때 다리 건너편에는 못, 망치, 톱 같은 뾰족한 물건들이 널브러져 있다. 이제 라일라가 걸을 길은 그녀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다는 뜻인가?”

“그냥 도구야. 나는 도구 좋아해.”


“라일라가 아이인지 어른인지 의견이 분분하다. 헤어스타일이나 홀로 헤매는 여정을 보면 어른인 것 같은데.”

“아이야. 근데 네가 어른으로 봤다면 어른인 거지 뭐.”


그래도 그와의 대화에서는 그의 책에서처럼, 상쾌한 바람이 부는 것 같았다. 숨길이 트이고 미묘한 생기가 꽃가루처럼 날리게 하는 바람. 그러면서 그는 자기 작품에 대한 중요한 키워드를 아찔하게 불어넣어 주었다.


“다리는 특별한 거야. 심리적으로 사람을 연결시키지. 그림과 글을 어떻게 조화시키냐고? 그냥 유기적으로 조화가 돼. 뭔가가 함께 시작되고 특별한 방식으로 전개되지. 내 머리에 있는 어떤 것을 표현할 수 있을 때까지 뭔가가 텍스트에서 자라나는 거야. 색깔은 그 자체가 언어이고.”


“라일라는 처음에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였어. 아주 복잡한 이야기. 처음에는 사람이 많이 나왔는데, 마음에 들지 않더라고. 그런데 작업을 할수록 점점 단순해지는 거야. 집중을 해야 해. 집중하지 않으면 궤도에서 이탈하게 돼.”


그는 『돌아와, 라일라』가 ‘생각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자리가 생길 때까지 글과 그림을 줄인 책’이라고 설명한다. 집중, 연결, 여백, 자유, 대비. 에바의 키워드는 이런 것들이었다. 지면이 짧아 글을 여기서 그쳐야 하는 게 안타깝다. 조속한 시일 내에 그를 한국으로 초청해 이야기를 충분히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 방문에 함께했던 스톡홀름의 사진작가 허숙영 선생이 방한 기간 중 보쎄를 돌봐주겠노라 약속했으니, 초대하면 흔쾌히 응하지 않을까?


김서정_작가, 평론가, 『판타지 동화를 읽습니다』 저자


-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26년 2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작가의 이전글당신의 첫 책방을 떠올리는 그림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