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비와 베끼기
아일린 마일스 지음 / 송섬별 옮김 / 166쪽 / 17,800원 / 디플롯
서점 카프카는 일 년 중 1월 한 달을 쉰다. 자영업자가 한 달을 쉰다고? 평균 자영업과 달리 문 닫는 시간이 제법 긴 편이다. 일주일에 이틀 월요일과 화요일은 정기 휴일이니 대충 잡아도 일 년이면 세 달을 쉬는 편이다. 나도 처음에는 열심히 일하겠다는 다부진 결심으로 일 년 내내 서점 문을 열었다. 서점을 열면서 성공하겠다는 생각은 없었기에 매일 문을 열겠다는 결심의 기저에는 두려움이 잔뜩 깔려있었다. 매일 열지 않으면 왔던 손님이 돌아갈 것이고, 그런 손님은 계속 늘어날 것이고, 결국에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아 폐업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었다.
일 년에 한 달을 쉬기까지 10년의 시간이 걸렸다. 나는 무엇을 두려워했던 것일까? 운이 좋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일어나지 않을 일을 미리 두려워한 것일 수도 있다. 쉬는 한 달 동안, 내가 한 일은 도서관에 가서 가만히 앉아 책을 읽거나, 멍때리거나, 산책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집에 일찍 들어가 맥주를 마시면서 음악을 들었다. 그러다 다시 책을 읽었다. 서점과 관련된 일은 일절 하지 않았다.
분명, 자본의 관점에서 보면 생산하지 않는 시간은 낭비다. 그래서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그 시간을 더 열심히 일하기 위한 충전의 시간이고, 뭔가 새로운 생산품을 기획하는 시간이라고 꾸민다. 하지만 내가 쉰 한 달은 뭔가를 생산하는 과정에 속한 기획 단계가 아니었다. 분명 낭비였다.
나는 낭비에 관해 이야기하기 위해 『낭비와 베끼기』 책을 펼쳤다. 시인인 아일린 마일스가 쓴 수필이다. 시인은 낭비를 헛일에 시간을 허비하고 불필요한 것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뭔가를 태우는 연료로 생각했다. 소모가 아니라 연소라고.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문학이 낭비된 시간이며, 좋은 점이라고는 하나도 없다고 생각한다. 문학은 도덕적 프로젝트가 아니라 그저 지극히 심오한 시간 낭비일 뿐이다.” (30쪽)
“나는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한 만큼, 할 수 있다고 생각한 만큼 완전히 시간을 낭비했다. 그 낭비는 어떤 틀 같은 것, 상 같은 것이었다. 성취였다. 문학은 당연히 낭비다. 그러나 상이란 그저 시간 그 자체였다.” (39쪽)
시인의 말에 따르면, 세상이 낭비라고 부르는 비생산적인 활동인 문학을 읽는 시간이야말로 시간 그 자체를 가질 수 있는 수단이라는 것이다. 어떤 목적을 위한 예비 단계라면, 그 시간은 목적에 복속된다. 그래서 시인은 낭비를 낭비 자체로 대하는 용기가 필요하고, 낭비를 가장 아름다운 방식으로 해내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그 용기가 아일린 마일스를 시인으로 만들었다.
그러면 ‘시인의 낭비는 시인이 되기 위한 예비 단계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의문이 든다. 그건 아니다. 결과론적으로 그렇게 연결될 수도 있지만, 낭비의 시간을 가진 마일스가 시인이 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낭비에는 방향이 없다. 앞에서 말했듯이 낭비는 그 자체가 목적이다. 그러니 목적에 의해 일직선상으로 있을 미래를 탕진한 낭비라는 건 성립되지 않는다. 방향이 없기에 낭비는 자유이기도 하다. 우리는 어딘가에 속하지 않으면 두려운 것처럼, 낭비를 통해 얻은 자유는 두려움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시간 자체를 어딘가에 속하게 하고, 낭비하는 자신을 참지 못한다. 주어진 자유를 삭제하고 다시 복속된다. 심지어 낭비를 부도덕함으로 규정하고 비난하기도 한다.
물론 어딘가에 속하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다.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오히려 낭비가 더 필요하다. 자본에서 낭비는 시간을 허투루 버리는 행위라면, 정신적인 면에서 낭비는 불필요한 것을 태우는 과정인 것이다. 연소를 통해서 자신을 온전히 소유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 그래서 시인은 모든 것을 탕진하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아마도 글을 잘 쓰고 싶은 사람이면 똑같은 경험을 반복할 것이다. 선배 작가의 글을 읽고 ‘아, 닮고 싶다’는 고백을 수백 번은 했을 것이다. 그래서 선배 작가를 사랑하면서도 시기하고, 원하면서도 멀리한다. 문장 형식과 호흡을 따라 하고 싶지만,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기에 내 마음속에 뒤틀림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이 뒤틀림이 훌륭하지는 않지만 다른 문장을 만들어내고 나만의 목소리를 만들어낸다.
그래서 낭비와 베끼기는 한 명의 시인 탄생 과정이기도 하면서, 자신의 목소리를 찾는 과정이다.
다시 질문이 떠오른다.
이러한 질문은 그냥 떠오르지 않는다. 낭비를 통해서 발화한다. 목적을 이루는 시간 속에 있다면 모든 질문은 목적을 이루기 위한 질문으로 변한다. 낭비를 통해 얻은 자유의 시간 속에서만 자신이 가진 목적 그 자체를 궁금해하고, 목적이 어디서 왔는지 질문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질문을 해왔던 선배가 있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그 질문을 집요하게 잡고 늘어진 문학이란 형식이 있다는 것도.
베끼기는 그런 질문을 베끼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질문에서 자신만의 답을 찾고, 그 답이 새로운 베끼기의 도구가 된다. 낭비와 베끼기는 언뜻 보면 가장 보잘것없는 행위 같지만, 어쩌면 자신을 찾는 유일한 행위일지도 모른다.
당연히 정답은 아니다. 하지만 궁금하다. 낭비를 통해 나는 어떤 시간을 가질 수 있을지, 그리고 베끼기를 통해 나는 어떤 목소리를 가지게 될지 말이다.
강성훈_서점 카프카 대표
-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6년 3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