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와 용기를 주는 책의 섬

씨앗을 틔우는 책방

by 행복한독서

서른 즈음 다시 진로를 고민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대학에 입학하고 취직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는 길을 따라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인 줄 알았지요. 울면서 운전했던 어느 저녁 퇴근길, 문득 ‘이렇게 사는 것이 맞나?’ 하는 물음이 떠올랐습니다. 그때 저는 다시 눈을 떴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었지만, 취미로 하란 소리를 많이 들었어요. 크고 작은 상을 받으며 인정도 받았지만 그것을 업으로 삼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다시 눈을 뜬 그때 방법을 찾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작가로서, 엄마로서, 가장으로서, 온전한 나로서 살아가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그때부터 다양한 경험을 하기 시작하며 구체적으로 꿈을 꾸었습니다.


살면서 많은 순간 넘어졌지만, 다시 일어났던 것은 책 덕분이었습니다. 책은 언제나 저를 먼 곳으로, 만날 수 없지만 만나야 할 사람에게로 데려다주었습니다. 특히 용기 내어 가입한 독서모임에서 만난 분들과의 좋은 기억이 든든한 용기가 되었고요. ‘그럼에도’라는 단어를 붙이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었던 책의 내용처럼 될 것이라 생각하며 2023년 독립출판사 ‘그럼에도’를 창업하고, 불안을 떨쳐낸 시간 끝에 2024년 11월 ‘책방 그럼에도’를 열었습니다.

동네4-책방 그럼에도1.png ⓒ책방 그럼에도

‘위로와 용기의 섬, 책방 그럼에도’라는 슬로건으로 운영한 지 벌써 2년 차에 접어듭니다. 인생의 중요한 도전을 앞두었을 때마다 앞이 캄캄해 보이지 않을 때마다 책 속으로 숨어들었습니다. 필요한 것이 있을 때도, 조언을 구해야 할 때도 언제나 책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삶의 방향 앞에 망설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도 그랬고, 앞으로 또 선택의 순간에 놓이겠지요. 그럴 때 곁에 책이 있다는 것은 큰 위로이자 용기입니다. 누군가 우연히 찾은 이 책방에서 자신의 운명을 이끌어줄 한 줄의 문장을 만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문을 엽니다. ‘위로와 용기’를 중심으로 문학책을 많이 입고하고요. 뒤이어 철학과 비문학책도 입고하고 있습니다. 독립출판물도 책방의 취지와 어긋나는 것이 아니면 제안을 받아 입고하거나 관심 가는 책은 직접 입고합니다.


책방을 열기 전에 고민했던 것 중 하나는 예약제나 이용권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책방을 지속하기 위해선 수입이 뒷받침되어야 하고, 적어도 운영을 할 수 있을 정도는 되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에는 장단점이 있듯, 예약제나 이용권 제도로 운영하기에는 성향상 맞지 않았고, 책방의 문턱을 낮추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판매량이 줄어들 땐 마음이 조급해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책방에 있는 저도, 방문해 주시는 분들도 서로 편안하길 바라며 방법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글쓰기와 강의를 병행하면서 책방 운영과의 균형을 맞추고 있어요.

동네4-책방 그럼에도2.png

책방 입구에 들어서면 짙은 연둣빛 타자기가 있습니다. 실제로 작동이 되는 거라 오시는 분들에게 체험을 권해드려요. 그리고 한 벽면에 있는 큰 책장에 각 칸마다 테마를 가지고 큐레이션을 해둡니다. 칸칸마다 어떤 공통점이 있는지 살펴보시는 것도 하나의 재미랍니다. 종이와 펜으로 만들 수 있는 건 무궁무진하다는 생각이라 무언가를 쓸 수 있는 공간도 작게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책방의 전면 책장 아래에 뜨개실이 칸칸마다 들어있는데요. 지역의 뜨개 브랜드와 협업하여 매주 두 번 뜨개 모임을 열고 있습니다. 독서와 뜨개는 많은 부분이 닮아있어서 그런지 책을 읽는 분들, 뜨개를 하는 분들 모두 만나면 참 편안한 기분이 들어요. 책방에서 뜨개질을 한다는 것도 이질감이 없고요. 뜨개 선생님이 다정하게 가르쳐주셔서 저도 처음보다 꽤 실력이 늘었답니다.


책방에서 프로그램을 꾸릴 때 책을 중심으로 어떤 것까지 해볼 수 있을까 자주 생각합니다. 책에서 꺼냈지만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질문들로 꾸린 독서모임을 열거나 작가님을 초청한 북토크를 달에 한 번씩 엽니다. 태화강 국가정원이 예쁜 계절엔 북토크를 겸한 북크닉을 열었고요. 최근에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라는 책을 중심으로 책방에서 지역 예술가들과 함께 클래식 공연을 열고, 이후 이야기를 나누는 형태의 독서모임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책방에는 책을 좋아하는 분들, 책을 막 읽으시려는 분들이 많이 옵니다. 책방을 열어서 만나게 된 인연들이 참 신기합니다. 그분들이 책방에 다녀간 후로 삶을 더욱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거예요. 위로와 용기를 드리고 싶다는 마음이었지만, 제가 받을 때가 더 많습니다. 처음 만났는데도, 특별한 것을 한 게 없는데도 책방을 열어줘서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세상에 필요한 일을 하고 있구나 싶어 벅차기도 합니다.


앞으로 책방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도록 열심히 소개하고, 알려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책을 매개로 재미있는 것들을 많이 열고 싶어요. ‘책방 그럼에도’는 위로와 용기를 주는 책의 섬이고요, 이곳에 방문하는 분들을 도민님들이라고 부른답니다. 3월은 새 학기의 시작이라 그런지 본격적으로 한 해에 들어서는 기분입니다. 우리 도민님들과 예비 도민님들 모두 올 한 해 주저하던 것을 성큼 도전할 수 있는 해가 되시길 바라며 오늘도 책방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주소 : 울산광역시 남구 왕생로100번길 12, 2층 좌측

운영 시간 : 월~토 13~20시(일 휴무)

인스타그램 : @geurumedo_


김수빈_책방 그럼에도 대표


-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6년 3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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