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만 남은 김미자
김중미 지음 / 408쪽 / 19,000원 / 사계절
이 책에는 노년과 돌봄, 엄마와 딸의 정체성, 작가의 역사성이라는 주제가 있다. 한국전쟁을 겪은 부모가 살아온 장소와 숨겨진 이야기도 담겨있다. 성별 분업이 제도화된 산업화 시기와 민주화운동의 시대를 거친 김중미 작가의 새 에세이가 반갑게 나왔다. 엄마가 되는 것이 꿈이었던 작가의 엄마는 노인이 되었다. 세상 속에 나가 공부방을 통해 공동체를 꾸렸던 작가는 이제 기억을 잃은 엄마 앞에 선다. 자격지심 속에서 밥을 해주며 사랑을 표현했던 엄마를, 곁에서 오래 위해주었던 엄마를 다시 생각한다. 지난 시절, 동두천의 가난과 방에 꾸며지던 크리스마스트리를 떠올린다. 양은 찬합 속에 담긴 딸기와 배가 얼마나 절실하게 마음을 채워줬는지를 떠올린다.
작가는 가난을 선택해 빈민운동을 하면서도 엄마처럼 모성이라는 굴레에 묶였다. 공동체에서 큰이모로 살면서 자식에 대한 미안함과 자책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동안 물려받은 부모로부터의 사랑이 가슴에 살아 있어 이 길도 지탱할 수 있었음을 깨닫는다. 그 긴 사랑의 내력이 책에 담겼다. 부모는 한국전쟁을 겪고 잃은 삶을 뒤돌아보지 않고 현실 속에서 사랑을 했다. 부산과 동두천, 인천을 거쳐 작은 가족의 보금자리를 꾸렸다. 그 속에서 돌봄을 받고 돌봄을 행하며 각자 주어진 최선을 다해 살아내었다. 그 길이 그대로 다음 세대의 삶을 이루는 뿌리가 되었다.
시간이 지나고 삶의 형태가 달라져도 남아 있는 것이 있다. 다정하고 선하게 살고자 했던 진심 어린 노력이 유산이 되었다. 가난 속에서 비굴하지 않고,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으며, 예술과 문화에 대한 사랑을 지키며 자부심을 잃지 않았다. 현실을 직시하고 정직하게 살아내고자 한 힘이 가난한 이웃과 더불어 살고자 한 작가의 의지로 전해졌다. 이전 세대가 지킨 존엄함이 다음 세대에서 꽃을 피웠다. 이 책에는 독자가 각자의 삶과 겹쳐 보고 한동안 물끄러미 보는 문장이 있을 것이다.
제목에 나왔듯 엄마만 남았다는 말은 사랑을 지켰다는 말과 같은 뜻이 되었다. 한편 시대 속에서 그들이 끝내 펼칠 수 없었던 재능이 있었다. 외할머니는 재능 있는 신여성이었지만 쓴 소설을 물려줄 수 없었다. 작가는 사라진 소설을 안타까워하며 외할머니를 상상하고 그 소설을 되살리고 싶어 한다. 능력이 많았지만 펼치지 못하고 자기중심적으로 살아온 아버지의 가슴에도 상처가 있었다. 그들이 모두 어우러져 단단히 감싸고 지킨 삶은, 드러났건 드러나지 않았건 존재했다. 함께하는 삶 속에서 결국 새로운 예술도 가능해진다.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이 연결될 때 서로를 키우는 새로운 이야기가 나오기 때문이다.
모성이 근대의 산물이듯 서사의 주체가 된 여성 작가의 등장도 역사가 길지 않다. 한국의 가족과 세대 갈등 속에서 사회와 개인의 관계를 살피며 소통과 연결을 시도한 논픽션은 여전히 새롭고 귀하다. 저성장, 고령화 시대에 그 속의 치열한 개인이었던 여성의 삶에 주목하는 책은 앞으로 이어질 것이다. 여성 작가는 알고 있는 모든 언어를 동원해 사라지는 여성의 삶을 복원하려고 끊임없이 시도한다.
안미선_작가, 『다정한 연결』 저자
-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6년 3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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