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념의 인문학
정혜경, 신다연 지음 / 352쪽 / 20,000원 / 따비
뒤늦게서야 「흑백요리사」를 몰아서 봤다. 순위를 정하는 프로그램이니 경쟁이 중요했겠지만 내 눈을 사로잡은 건 출연자 중 한 명인 선재스님이 만든 음식들이었다. 자극적이지도 않아 보이는데 극찬을 받은 우리 식재료, 우리 양념으로 만든 음식이 유난히 궁금했다. 그런 궁금증이 나에게만 있었던 건 아니었나 보다. 설 연휴에 여유롭게 리모컨을 돌리면서 TV를 보다 보니 각 방송사에서 전통 음식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연이어 방송하고 있었다. 전통 한식에 사용되는 식재료의 유래와 역사를 되짚고 한식의 뿌리를 찾아 새로운 메뉴를 만들기로 했다. 이러한 지적 호기심의 정점에서 『양념의 인문학』을 만났다.
책은 우리가 매일 무심코 섭취하는 ‘양념’이라는 존재를 인문학적·과학적 시선으로 재조명한다. 소금, 간장, 설탕처럼 부족한 맛을 채우는 ‘조미료’와 파, 마늘, 생강처럼 잡내를 잡고 향을 돋우는 ‘향신료’로 큰 줄기를 나눠 설명한다. 저자는 이 두 요소가 어우러져 어떻게 한식이라는 독특한 세계를 구축했는지 선사시대부터 근대에 이르는 역사를 통해 촘촘히 추적한다.
책에서 특별히 주목하는 지점은 우리 전통 양념의 독창성이다. 된장과 간장은 만국 공통의 재료인 소금을 기본으로 하지만, 콩이라는 원재료와 발효라는 시간의 마법이 더해져 세계 어디에도 없는 깊은 감칠맛을 만들어냈다. 해외에서 유입된 고추를 활용해 탄생시킨 고추장 역시 핫소스와는 결이 다른 한국만의 매운맛으로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먹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장을 담그는 문화가 우리의 민족정신을 계승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여기에 단맛을 내는 조청과 김치의 기본이 되는 젓갈에 대한 설명은 우리가 잊고 지냈던 전통의 지혜를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음식에 향기로운 맛을 더하는 조미료로 통하는 향신료라고 하면 후추, 허브 등 서양의 식재료를 떠올리지만 우리 전통의 향신료는 깻잎, 미나리, 방풍 같은 우리 향신 채소도 포함된다. 그중 향신 채소인 마늘과 파, 고추는 한국 음식의 정체성을 나타낼 정도로 많이 사용된다. 오늘날 한국의 맛으로 통하는 이 향신 채소와 향신료가 바꾼 한식의 변화와 발전도 짚어본다.
저자는 다수의 역사적 자료를 바탕으로 우리 조미료의 전통을 소개하면서도 ‘전통’이라는 이름 아래 모든 것을 맹신하기보다 현대적인 건강 관점에서의 균형도 잃지 않았다. 우리 양념이 가진 생리활성성분의 우수성을 인정하면서도 지나치게 짜고 매운 자극을 줄이고 국물 섭취를 조절해야 한다는 현실적인 조언을 덧붙인다. 현대인의 삶 속에서 지속가능한 유산으로 계승하려는 저자의 진정성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이 책은 단순히 양념의 종류를 나열한 백과사전이 아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긴 맛의 유전자를 이해하고, 새로운 한식의 미래를 설계하려는 이들에게 권하는 따뜻하고도 날카로운 지침서다. 덕분에 오늘 저녁 식탁 위에 놓인 된장찌개와 김치 한 조각이 다르게 보일 것이다.
남우정_기자
-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6년 3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