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를 따라가 찾은 나의 꿈

by 행복한독서

사실 그림책작가는 내게 오랜 꿈이었다. 그 꿈을 마음에 담고 첫 창작 그림책을 출간하기까지는 10년이라는 시간이 더 걸렸다. 지금의 나를 그림책작가로 이끈 꿈의 시작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시간을 한참 거슬러 올라가 보았다. 그 끝에는 커다란 토끼 한 마리가 있었다. 숲속의 쭉 뻗은 나무들 사이에서 커다란 몸을 웅크린 채 까만 눈으로 나를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 토끼는 대만 작가 지미 리아오의 『숲 속의 비밀』에 등장하는 토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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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히 잠든 아이는 창밖에서 토끼가 부르는 휘파람에 깨어난다. 아이는 그 토끼를 따라간다. 그 길에서 만난 문을 열자 숲이 펼쳐진다. 그곳에서 아이는 토끼와 함께 잃어버린 꿈들을 만난다.

이 그림책을 만난 시절의 나는 대학 졸업 후 진로에 대해 고민을 하던 중이었다. 전공을 살려 취직을 해야 할지, 취미로 하던 그림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없을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지만, 정작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던 나날이었다. 시간도 많던 시절이라서 집 앞 도서관에서 책장을 둘러보며 마음이 이끄는 대로 책을 읽곤 했다.

그러다 우연히 펼친 이 그림책 속에서 나 또한 주인공 아이처럼 토끼를 따라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숲에서 잊고 지냈던 꿈을 떠올렸다. 학창 시절에 밤새 연습장을 가득 채워 만화를 그리고 친구들과 돌려보던 시간들.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를 만든다는 것은 내게 큰 기쁨이었다. ‘그림책작가가 된다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 수 있겠구나’라고 그때 어렴풋이 생각했다.


아이는 잃어버린 꿈들을 만나 숲속에서 신나게 놀고, 커다란 토끼를 타고 하늘을 날아다닌다. 그리고 다시 적막한 도시로 돌아온다. 아이는 다시 꿈을 꾸고 싶어 한다.

그 아이처럼 아니, 나도 어린 시절에는 뭐든지 상상하고 꿈꿀 수 있었다. 어른이 된 나도 다시 꿈을 꾸기로 했다. 먼저 그림을 그리는 일부터 시작했고, 차곡차곡 그림책작가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다시 만난 꿈은 내 안에 아이의 시선으로 일상을 바라보도록 했다. 그러면 무심히 지나치는 하늘의 구름도 그냥 구름이 아니게 된다. 토끼가 되기도 하고, 애벌레나 공룡이 되기도 한다. 하늘에서 경주도 하고, 일등이 된 구름 토끼와 함께 날아오르기도 한다. 이런 장면들은 나의 첫 창작 그림책 『우리 아빠는요』에 담겨있다. 그 외에도 『반짝반짝 봉선아』에서 종이배를 타고 노는 할머니와 손주의 모습이 나오고, 『밤송이 아니고, 한송이 아니고!』에서 다양한 상상을 하며 노는 아이들의 모습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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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권, ‘그림책이 이럴 수도 있구나’ 하며 내게 깊고 오랜 여운을 남긴 그림책이 있다. 빨간딱지 아니 『무릎딱지』(샤를로트 문드리크 글, 올리비에 탈레크 그림)다. 나는 이 그림책의 제목을 자주 혼동한다. 아마도 그림책 전반에 쓰인 빨강이 나에게 무척 인상적으로 남았기 때문인 것 같다.


빨강으로 뒤덮인 표지에는 한 아이가 무릎에 난 빨간 상처를 바라보며 오도카니 앉아있다. 마음에 상처를 입은 주인공 아이가 넘어지며 실제 무릎에 상처가 생긴다. 그 상처가 아물어 딱지가 되었다가 떨어져 나가면서 새살이 돋아나는 것처럼 아이의 마음속 상처도 서서히 아물어간다.


첫 문장은 그림책에서 쓰기에는 파격적으로 느껴진다. “엄마가 오늘 아침에 죽었다.” 엄마의 죽음을 말하는 아이의 어조는 다소 담담해 보인다. 하지만 책장을 넘기다 보면 그렇지만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아이가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이 여러 가지 감정으로 밀려온다. 그러다가 아이의 슬픔이 폭발할 때, 아이를 보듬어주는 이는 엄마의 엄마, 할머니다. 아이에게는 곁에서 마음을 어루만져줄 어른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내 그림책 곳곳에도 그런 어른들이 등장한다. 『밤송이 아니고, 한송이 아니고!』에서 이름으로 놀림받은 송이에게 진정한 이름의 의미를 알려주는 엄마, 『반짝반짝 봉선아』에서 일하는 바쁜 엄마의 빈자리를 따듯하게 채워주는 할머니처럼.

그림2-무릎딱지_본문.png ⓒ한울림어린이(『무릎딱지』)

이 그림책은 마냥 슬프지만은 않다. 아이의 순수한 모습이 곳곳에 따듯한 시선으로 담겨있어 미소가 지어지기도 한다. 전반적으로 그림에 사용된 빨강과 간결한 그림체는 슬픔과 따듯함을 직감적으로 동시에 느끼게 한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볼거리가 많은 그림책을 좋아했던 나는 이 책을 만난 이후로 그림책에서 그림이 지니는 상징과 역할을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되었다. 이는 내가 그림책을 만들 때 늘 유념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꿈꾸던 그림책작가가 되었지만, 늘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를 지으며 사는 것은 아니다. 바쁘게 일상을 살다 보면 이야기는 저 멀리 사라지곤 한다. 붙잡아 두고 싶지만 쉽지 않다. 그럴 때면 작업방 책상에 앉아 끊어진 이야기를 다시 불러낸다. 주인공에게 말을 걸고,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그 안에 나도 들어가 있다. 주인공과 함께 웃고 울며 서로 위로를 주고받기도 한다. 그 순간이 참 좋다. 평생을 하고 싶은 일이다. 기왕이면 조금은 따듯한 온기를 전해줄 수 있는 그림책을 만들고 싶다. 나를 만든 그림책들처럼 그 이야기들이 누군가의 마음에 가닿기를 바라면서.


반히_그림책작가, 『반짝반짝 봉선아』 저자


-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26년 3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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