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레스에서 발견한 나만의 빛깔
왕자와 드레스메이커
젠 왕 글·그림 / 김지은 옮김 / 288쪽 / 16,000원 / 비룡소
작가 젠 왕의 그래픽노블 『왕자와 드레스메이커』를 읽으며 열두 살 때 엄마가 입으라고 준 옷이 너무도 입기 싫어서 집 밖으로 도망 다녔던 기억이 났다. 평소 착한 아이로 인정받던 내가 거의 유일하게(?) 반항했던 유년의 기억인데, 당시 분홍빛 프릴이 달린 블라우스는 불편하고 심하게 과장되어 보였다. 그렇다, 그것은 바로 내가 ‘내가 되지 못하는 부자유한 느낌’이었다.
왕자 세바스찬과 재봉사 프랜시스도 모두 자기 자신이 되고 싶어 한다. 드레스 입는 걸 좋아하지만, 어머니의 드레스를 몰래 입는 것으로 만족하던 세바스찬. 그는 프랜시스의 도움으로 자신이 원하는 디자인의 드레스를 입을 수 있게 된다. 말단 재봉사로 일하던 프랜시스가 독특한 개성의 드레스를 만들었고, 그 드레스를 보게 된 왕자 세바스찬이 프랜시스를 자신의 전용 재봉사로 발탁하게 된 것이다. 그를 위해 비밀리에 드레스를 만들기 시작한 프랜시스 덕분에 ‘크리스탈리아’란 이름으로 여장을 해서 사교계까지 진출하게 된 세바스찬은 왕자로 지낼 때와는 다르게 생동생동 빛이 나고 행복하다.
그를 유일하게 이해하는 프랜시스가 세바스찬의 정체를 처음 알게 된 순간에도,
라고 말하는 장면은 그래서 뭉클하다. 그녀 역시 세상이 강요하고 원하는 틀에서 벗어난 드레스를 만들고 싶어 했기 때문일까? 세바스찬과 프랜시스는 서로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응원해준다.
자신의 진정한 느낌과 생각을 표현하지 못하고, 자발적으로 행동하지 못하면 가짜 자아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은 이야기한다. 세상과 타인이 기대하는 모습으로만 살아간다면, 진짜 나를 잃어버릴 수밖에 없다는 말일 터. 프랜시스와 세바스찬은 진짜 나를 찾아가는 것이 왜 필요한지, 또 타인의 시선 때문에 진짜 자기 자신을 만나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제법 묵직한 주제를 따뜻하고도 유쾌한 그림체로 질문한다.
드레스를 입는 것이 세상에 알려질까 두려워 비밀을 유지하길 원하는 세바스찬과는 다르게 프랜시스는 자신이 만든 드레스를 세상에 알리고 싶어 한다. 둘만의 ‘드레스 프로젝트’는 언뜻 좌초되는 듯 보이지만, 세바스찬은 프랜시스가 자신에게 일깨워준 것처럼 진짜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을 멈추지 말라고 프랜시스를 응원한다. 그것은 대중적인 유행의 흐름 속에서도 단단하게 자신만의 디자인, 자신만의 빛깔을 만들어낼 때 세상에서 유일한 나란 존재의 가치를 만날 수 있다는 진실이 아닌가.
진취적인 왕자의 도움을 받는 수동적인 여성 캐릭터에 익숙한 동화의 틀을 과감하게 깨뜨린 점에서도 이 책은 주목할 만하다. 프랜시스와 세바스찬이 각자 꿈을 향해 치열하게 걸어가면서도, 끝까지 서로의 꿈을 존중하고 도와주는 모습이 그러하다. 아마도 그들은 자기 자신을 더 깊이 사랑하게 되지 않았을까? 우리 안에 있는 세바스찬과 프랜시스에게 힘껏 응원을 보내고 싶다.
윤정선_작가, 『퇴근 후, 그림책 한 권』 저자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0년 2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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