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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독서 Aug 18. 2021

블레즈씨에게 일어난 일

마음이 보내는 신호

블레즈씨에게 일어난 일

라파엘 프리에 글 / 줄리앙 마르티니에르 그림 / 이하나 옮김 / 40쪽 / 14,000원 / 그림책공작소



벽지, 화분, 그림 등 자연물로 꽉 찬 욕실에서 주인공 블레즈씨가 출근 준비를 하네요. 짜증 난 표정을 보니 월요일 아침인 것 같고, 클래식 일자 면도기를 사용하는 것을 보면 섬세한 예술가 기질을 가진 사람으로 보입니다. 이런 블레즈씨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날지 궁금한데요. 그것도 잠시 표지를 넘기면 바로 ‘그 일’이 시작됩니다. 침대에서 내려와 슬리퍼를 신으려는데, 어! 잠자기 전엔 멀쩡했던 블레즈씨의 발이 두툼한 곰 발로 변해있어요. 오호, 시작하자마자 독자를 냉큼 잡아당기네요. 왜 곰 발이 되었는지 알아내기 전까진 그 누구도 책장을 덮지 못할 겁니다.



이야기의 후반부를 공개하면 감상에 방해될 수 있으니 실마리가 될지도 모를 제 이야기를 살짝 풀어보겠습니다. 섬세한 예술가 기질인 저도 블레즈씨가 겪은 일을 3년 전에 겪었습니다. ‘그 일’은 갑자기 나타났습니다. 상황이 나아진 지금 생각해보면 몸과 마음이 신호를 보내어 조심하라고 알렸지만, ‘갑자기 왜 이래?’ 하고 전혀 눈치채지 못했어요. 두통과 귀통증이 잦아졌고, 의욕은 줄고 짜증은 늘었어요. 병원에 갔더니 스트레스가 원인일 거라는 뻔한 말을 들었지요. 블레즈씨가 “내일이면 모든 게 원래대로 돌아올 거야”라고 여긴 것처럼, 월급을 받아야 하니 저 역시 지나가는 바람으로 여기며 매일 서둘러 집을 나섰습니다. 몸과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할 적기에 오히려 반대의 행동을 하고 말았는데 정말 후회되는 일 중 하나에요.


그동안 힘드셨겠네요. 당신은 우울증입니다.


보다 못한 아내의 권유로 정신과에 가보니 병명을 알게 되었습니다. 치료는 5년 이상 걸리고, 낫는다는 보장도 없으며, 약은 일상이 가능하도록 도와주는 정도일 뿐 자연 치유를 바라는 수밖에 없다고 하니 우울증을 ‘마음의 암’이라고 부르는 이유를 그제야 알았습니다. 블레즈씨는 단 일주일 만에 잃어버린 자신을(?) 찾았지만, 저는 병명을 찾기까지 일 년, 이유를 찾기까지 이 년이 걸렸습니다. 


돈 벌기 위해 이십 년 이상 억지로 일했고, 윤택한 삶을 위해 야근을 밥 먹듯 했으며, 제2의 인생을 위해 주말마다 글쓰기 연습을 했으니 ‘마음’은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주인이 “그것도 못 참아”라고 말하니 얼마나 섭섭했을까요? 곰 발로 만들고 온몸을 곰 털로 뒤덮어도 회사에 가니까 ‘날 무시했지. 어디 한번 혼나 봐라’ 하며 마음은 문을 굳게 닫아버렸습니다. 


개인의 생각, 자유와 삶을 중시하는 나라 프랑스에서 『블레즈씨에게 일어난 일』이 ‘2018 페피트상’을 수상한 건 현대인의 아이러니가 공감되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한국도 제2의 블레즈씨가 속속 나타날 테고 자신이 왜 아픈지도 모른 채 회사에 가야 하니, 출근하는 곰들이 뉴스에 등장할 날이 머지않았습니다. 더불어 겨울잠에서 깼더니 사람이 되어버린 『난 곰인 채로 있고 싶은데…』도 함께 읽어보길 바랍니다. 


표영민_그림책 작가, 『아기 곰의 특별한 날』 저자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20년 12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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