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를 치유하는 따뜻한 손의 여정
손 없는 색시
경민선 글 / 류지연 그림 / 82쪽 / 18,000원 / 고래뱃속
인형극을 창작하는 예술무대산의 미술감독으로 오래 일해 온 저에게 그림책은 즐거운 놀이이자 안식처입니다. 2018년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지원을 받아 예술무대산에서 기획한 ‘손 없는 색시’ 공연을 그림책으로 만들 기회가 찾아왔고, 또 운명처럼 고래뱃속 출판사를 만나게 되면서 그림책 인형들이 손을 찾으러 여행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경민선 작가는 희곡 『손 없는 색시』를 어린이에게 꼭 맞는 이야기로 다시 써주었습니다. 그림책 『손 없는 색시』는 설화에서 모티브만 따왔을 뿐, 새로운 이야기입니다. 붉은점이라는 등장인물은 손 없는 색시가 남편도 죽고 손도 떠난 후 절망에 빠져 있을 때 낳은 늙은 아기입니다. 절망의 끝에서 태어나 희망을 이야기하는 해탈한 스님 같은 붉은점이 제 마음에 들어왔고, 붉은점 인형부터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오랫동안 무대 작업을 해왔기 때문에 자연스레 그림책 속에 또 하나의 작은 무대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거즈 천을 주재료로 사용했는데 거즈는 실제로 상처를 감싸는 용도로 쓰이며 손 없는 색시가 상처를 치유해가는 여정에 잘 어울리는 소재였습니다. 손 염색으로 각 계절의 배경을 만들고 인형의 표면을 처리하고, 머리카락과 의상 또한 거즈 천을 여러 형태로 변형해 따뜻한 느낌을 만들어냈습니다. 특히 계절의 변화는 생명의 순환을 느끼게 해주며 각 등장인물과도 어울리는 시공간적 배경이 되어주었습니다.
같은 시기에 공연과 그림책 작업을 동시에 해서 힘들기도 했지만, 서로 다른 장르이기에 영감과 도움을 주고받기도 했습니다. 공연으로 올라가기까지 그림책의 구성 스케치가 공연에 영향을 주기도 하고, 공연 장면이 그림책 표현에 영향을 주기도 했습니다. 만약 공연과 그림책을 모두 보게 된다면 각각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손 없는 색시가 손을 찾는 여정에 만나는 등장인물들은 전쟁 중 저마다 다른 상처와 이야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들은 서로의 상처를 공감하고 보듬어주며, 그러는 사이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게 도와줍니다. 손 없는 색시는 가장 슬픈 절망의 끝에서 자신의 늙은 아기 붉은점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붉은점과 손을 찾는 여정을 통해 자신의 상처를 받아들이고 삶을 살아갈 힘을 얻게 됩니다.
그림책 작업은 겨울에 시작해 다음 해 겨울을 지나 다시 봄이 올 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그림책 속 붉은점과 손 없는 색시의 여정처럼 말입니다. 그 긴 여정을 함께하며 힘들지만 마음이 따뜻했습니다. 그림책 속 등장인물들이 내미는 손에서 따뜻함이 느껴졌습니다. 때로는 내 안의 상처를 마주할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삶 속에서도 내가 나에게 혹은 다른 누군가에게 그런 따뜻한 손이 되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류지연_예술무대산 미술감독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19년 7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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