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집에서 논다는 거짓말
정아은 지음 / 260쪽 / 14,800원 / 천년의상상
최근에 겪은 일이다. 평일 낮에 집에서 온라인으로 물건을 사려는 나에게 내 또래 여성 판매자가 말했다.
“주부세요? 집에 계셔서 참 좋겠어요. 여기 바깥세상은 한마디로 지옥이에요.”
부러워한다기보다 은근히 무시하는 태도였다. 주부라면 집에서 노는 사람, 바깥세상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라는 전제를 단. ‘이 사람 뭐지? 왜 이런 말을 할까? 바깥세상이 지옥인지 누가 물어봤냐고!’ 생각하면서도, 또각또각 경쾌한 걸음마다 목에 맨 사원증이 달랑이는 일하는 여성의 이미지가 떠오른 순간, 그녀가 부러워졌다. 가사나 육아가 아닌 자신만의 일이 있고, 그만큼 경제력이 있을 테니까.
정아은 작가는 큰아이 다섯 살에 작은아이를 임신한 채로 직장을 그만둔다. 친구와 친척 여성들로부터 연이어 막말을 듣게 된다.
『당신이 집에서 논다는 거짓말』은 ‘집에서 논다’는 말의 기원을 찾아 열다섯 권의 책을 읽고 글을 쓴 작가의 독서 기록이다. 집에서 가사를 담당하는 이들을 폄하하는 사회현상에 문제의식을 갖고 그 말 속에 담긴 사회·역사·경제적 비밀을 파헤친다.
마르크스의 『자본론』과 마리아 미즈의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를 읽고 비교 분석한다. 마르크스가 자본주의를 노동자와 자본가 두 개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 것에 반해, 마리아 미즈는 자본주의를 떠받는 3대 재생산 요소로 여성, 자연, 식민지를 더한다. 이 중에서 여성은 남성 노동자를 먹이고 입히고 재우는 ‘재생산’ 노동을 담당해왔다. 즉 자본주의는 노동자와 자본가라는 양대 축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노동자와 자본가와 재생산자라는 세 개의 축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재생산 축이 무너지면 노동자와 자본가도 더 이상 존속할 수 없게 된다. 주부가 남편인 노동자에게 해주던 온갖 종류의 무상 재생산 서비스가 사라지면 노동자는 그 모든 서비스를 돈을 주고 구매해야 할 테고, 필연적으로 임금 인상이라는 결과를 낳을 테니까.
‘집에서 논다’고 인식되는 주부의 재생산 노동은 출산과 육아라는 생애 과업은 물론 몸의 살과 피가 될 음식을 만드는 행위, 몸을 보호하는 의복을 깨끗이 빨아 너는 행위, 몸이 머무는 공간을 쓸고 닦는 행위 등 몸을 쾌적한 상태로 보존하기 위해 행하는 다양한 생명 유지 활동을 포함한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누군가의 주머니를 불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한쪽 성에게 미뤄지고 하찮은 일로 치부된 가사와 육아가 체제 너머 그 가치에 걸맞은 위상을 찾기를 바란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주부에게 몰아주었던 일련의 재생산 노동을 가족 구성원 각자가 제 몫을 스스로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되기를 바란다.
김정은_작가, 『엄마의 글쓰기』 저자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0년 7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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