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그게 뭐길래?
자존감이 낮아 책을 썼다.
작가란 무엇일까?
문학작품을 창작하는 사람이라는 사전적 의미로는 작가란 말을 표현하기 부족한 것 같다. <퇴근하며 한 줄씩 씁니다>의 저자 스테르담은 책에서 "작가라서 쓰는 게 아니라 쓰니까 작가입니다"라고 말한다.
그 말에 따르면 우리는 모두 작가다. 다만 그 글쓰기를 누구를 위해 하느냐에 따라 다를 뿐이다.
내가 글을 처음 쓰게 된 건 바로 낮은 자존감 때문이었다. 나는 9살, 7살, 5살 세 딸의 엄마다. 그리고 결혼과 동시에 주부가 되었다. 주부이자 아내, 엄마, 장녀 딸, 며느리 그게 나의 역할이다.
주부라는 역할은 낯설었다. 주부에 엄마가 더해지자 힘듬은 배가 되었다. 온통 모르는 것 투성이었다. 초보 엄마는 매해가 익숙하지 않은 일들뿐이었다. 아이를 돌보다 보면 고립된 생활을 하는구나란 생각이 든다.
낯선 타지에서 아는 사람 없이 덩그러니 아이와 단둘이 거실에 있었다. 내 손길이 필요한 아이를 돌보고 말을 건다. 어느새 자취할 때처럼 혼잣말이 늘었다. 혼자 말하고 혼자 긍정한다. 그런 나를 알아챌 때면 텔레비전을 틀었다. 사람 말이 그리워서다. 남편이 오기 전까진 내가 어른인지 애인지 혀 짧은 소리만 해댄다.
가끔은 다른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그리고 작아진다.
"무슨 일하세요?"라는 물음 때문이다. 대화를 이어가기 위함인지, 공감을 해주려는 건지 처음 만나는 그들은 내 가 하는 일을 묻는다. 처음엔 잠시 일을 쉬는 중이라 말했다. 그 후엔 아이가 어려서, 그다음엔 둘째, 셋째가 어려서... 어느새 전업주부라고 나를 소개하게 되었다. 혹은 "그냥 집에 있어요."라던가.
하는 일없는 사람처럼 그냥 집에 있어라니.. 나 스스로 초라하단 생각이 들 때 퇴근하는 남편이 말했다. "잘 놀았어?"라고. 나는 그 말에 울컥했다. 그리고 남편에게 "나 집에서 안 놀고 있다고!"소리치며 울기 시작했다. 결혼 후 화성으로 이사를 갔다. 타지에서 아는 사람 없이 온종일 말 못 하는 갓난쟁이와 혼잣말만 하는 나. 내가 없는 엄마, 아내로의 나. 나는 도대체 어디 간 걸까?
텔레비전에서 나와 비슷한 상태를 이렇게 말했다. "자존감이 낮습니다."라고. 자존감 그게 뭐길래?
거울을 보지 않았다. 거울 속 내 모습엔 내가 인정할 수 없는 모습뿐이었다. 부스스한 머리, 충혈된 눈, 짙은 다크서클, 늘어난 주름, 바싹 마른 입술, 우울한 표정 그 모든 것이 그 안에 있었다.
마음은 덜 자란 나와 제 나이를 먹는 내 얼굴.
문득 왜 이리 초췌하고 초라해졌을까, 자기 연민이 밀려왔다. 하루가 우울하고 한편으론 초라한 내게 화가 났다. 뭘 해도 부정적인 말이 먼저 튀어나갔다. 남편은 내게 '부정진아'라며 별명 아닌 별명을 붙여줬다. 내 모습을 바꾸고 싶지만 달라질 거라 상상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상태였다.
작가 그게 뭐길래? 내 이야기를 쓰는 건가?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쓸 수 있는 건 내 이야기뿐이었다. 그런데 나는 내가 보여주고 싶은 부분만 골라 적고 있었다. 스스로를 천재 작가라고 말하며 나를 쓰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쓸 말이 많아 정신없이 받아 적었고, 또 어느 날엔 머리를 쥐어뜯어도 뭐라 써야 할지 감이 안 잡힐 때가 있었다. 숨기고 싶은 이야기는 쏙 뺐다. 내 바닥을 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일지 모르겠다. 그런데 내 과거를 빼고, 내가 쓰고 싶은 것만 골라 쓰는 건 불가능했다.
매년 갱신되는 흑역사의 증인. 그게 바로 나니까.
종이 한 장에 앞뒷면이 내 장점과 단점이라면? 내 단점이 누군가에겐 장점이 되고, 내 장점이 또 다른 사람에겐 단점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내 흑역사도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되겠지라는 마음으로 적어야 했다.
나란 사람은 흑역사가 많다. 나는 하고 싶은 말을 잘 참는 사람이었다.
말이 안 통해서, 내 생각이 정리가 안되어서, 눈물이 먼저 나서... 수많은 이유 속에 할 말을 삼켰다. 그렇게 할 말을 못 해서 내 흑역사는 매번 이불 킥 감이다.
어느 날부터 이유 없이 머리가 아프고 가슴이 답답했다. 나는 그저 잠을 못 자서, 피곤해서라고 생각했다. 누군가가 "집에서 논다."라고 표현하는 주부도 할 일이 태산이니까.
할 일만큼 자존감도 낮아진다. 나 자신이 집안의 가구처럼 느껴진다. 가족의 밥을 챙기는 밥순이나 집안일해주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기분변화가 하루에서 몇 번씩 오르락내리락한다. 아이들도 눈치를 보고 예민해졌다.
글을 통해 나 자신을 드러내고, 속엣말을 꺼낸다. 두서없이, 손이 가는 대로, 생각하지 않고 적었다. 나를 쏟아냈다. 감정을 쏟아부었다.
삼킨 감정을 토해내며 내 바닥을 본다. 가장 초라하고 작은 나를 글을 통해 보게 되었다. 내 현재를 변화시키기 위해 내 과거를 보는 건 중요했다. 과거가 누적된 결과가 지금의 나였다. 내가 불편해하던 일들의 원인은 지난 일에 있었다.
과거를 마주 보는 것은 어렵다. 왜 해야 할까? 피하고 싶다 생각이 들 때면 아이들을 바라봤다. 엄마라서 변해야 했다.
자존감이 낮아 책을 썼다. 더 나아지는 사람이 되겠다며 매일 글을 썼고 쓰고 있다.
작가란 변하는 과정을 적는 사람이다. 어제보다 오늘이 나아졌다 스스로를 다독이는 사람이다.
인생이란 글을 쓰는 작가인 동시에 아이가 볼 책이 된다. 아이는 엄마를 읽으며 생각하고 상상하고 성장한다. 내가 내 부모란 인생을 읽는 독자이며 작가이듯. 아이 또한 자신의 삶을 쓰는 작가이자 독자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작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