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행복부자작가 Sep 14. 2022

행복을 부르는 주문, 감사

1장  난 왜 매일 힘들까?

01 난 왜 매일 힘들까?


지금 당신은 행복하나요?
책을 쓰기 전 내가 느끼는 세상은 마음에 들지 않는 일로 가득 차 있었다.
내 환경뿐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세 아이의 엄마, 결혼과 동시에 전업주부,
뭐하나 특출 나게 잘하는 것도 없고,
매년 12월만 되면 '하는 일 없이 나이만 먹고 있구나...' 한숨만 내쉬던 그런 30-40대 여자 사람이었다.


세 아이를 키우며 늘 피곤한 모습, 늘어진 바지...
초라한 내가 싫어서 어느 순간엔 거울도 보지 않았다.
예민한 성격, 부정적인 말..
왜 이렇게 짜증이 나고 힘든 건지 나 자신이 감당 안 되는 순간이 왔다. 대중매체에서 한창 자존감이 중요하단 말을 했다. 이런 작아진 내 모습은 자존감이 부족한 것이구나 깨닫게 되었다.


내가 왜 그런지 알았지만 별다른 해결책이 없었다.
여전히 난 전업주부였고,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아이를 키우며 언어능력까지 퇴화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몸은 피곤하고, 세상은 불평불만이 넘쳐났다.
내 하루엔 감사할 일도 없다 생각했다.
감사할 일이 생기지 않는데 어떻게 감사하다 말할 수 있을까? 그런 마음으로 살았다.
그저 쉴 새 없이 무언가를 하며 혼자 있는 시간을 채웠다. 빼곡한 투두 리스트에 줄을 쳐가며 할 일을 해치우고 나면 하루가 지나갔다. 잠자리에 누워 '오늘 하루도 갔구나. 피곤했다.'라고 속으로 중얼거리며 잠이 들었다.

잠깐 머리만 대고 누운 것 같은데 아침이 되었다.
'아.. 오늘도 아침이 밝았구나. 아이들 등원 준비시켜야겠다. 오늘은 늦었네. 빨리 준비시켜야겠다.'
기분이 다운된 상태로 아침에 내게 주어진 과제를 하듯 등원 준비를 했다. 아이들에게 "빨리빨리 해. 늦었어." 재촉하는 엄마인 것이다.

아이들이 일찍 준비해서 놀고 있으면 '오늘은 어쩐 일로 일찍 준비했지.' 당연한 일을 했다고 생각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니 칭찬받을 일도 아니라 여긴 셈이다. 등원하는 아이의 기분도, 내 기분도 즐겁지 않았다. 자연히 아침마다 짜증 내는 아이들과 실랑이하는 모습이 반복되었다. 어느 날은 '내가 왜 이러고 있어야 하나.' 생각이 들었다.

많은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외부는 내면세계가 투영되어 나타난 것이다.'라고.
내 의식이 지금의 현실을 만든다는 것이다.
현재 내가 힘들단 것은 내 스스로 주문을 걸었다는 뜻이다. 부에 대한 책을 읽으며 과거의 경험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과거에 들었던 말들이 돈과 부자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래 부자가 된 내 모습도 부정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게 내가 현재 부자가 되지 못한 이유라고 한다.
부의 대해 들었던 말도 평생 영향을 미치는데
내가 아이들에게 말하는 것들은 어떨까?
아이의 무의식에 남지 않을까?
변해야겠다 생각했지만, 방법을 알지 못했다.
불안과 걱정은 머릿속에 맴돌며 점점 더 커져갔기 때문이다.

그때 부의 책에서 나온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며 감사하기였다. 예를 들어 돈에 대해 말할 때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물건을 샀는데 일주일 뒤 내가 산 물건이 세일을 할 때 우리는 이렇게 말한다. "조금 나중에 살걸. 더 싸게 샀을 텐데." 비싸게 산 것에 집중하며 후회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사서 사용한 것에 감사하는 것이다.
좋아한다, 감사한다는 것은 기분 좋은 감정이다.
나도 내가 쓴 돈에 대해 감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감사 메모를 적다 보니 새로운 일이 생겼다. 감사할 일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글자를 공부하는 첫째 아이가 학교에서 편지를 써왔다. 감사 메모를 적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 어설프게 하나 적어두곤 아이들에게 고맙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4월이 되어 쓰는 감사 일기는 조금씩 달라졌다.
일상을 바라보고 감사를 찾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감사를 발견하며 세상은 달라졌다. 내 위치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그림 같았다. 분명 같은 상황인데 다른 결과가 나왔다.


불평불만, 불안, 걱정이 줄었다.

내가 조금씩 달라지자 아이들의 표정이 바뀌었다. 남편의 표정도 달라졌다. 내가 안 좋은 점을 찾거나 부정적인 말을 할 때마다 남편을 나를 '부정 진아'라 불렀다. 감사일기를 쓰고 난 뒤 어느 순간 별명처럼 부르던 말은 사라졌다. 내 감사는 거창한 일에 대한 것이 아닌 일상과 가까워졌다. 그리고 감사는 자라나고 있다.


난 왜 매일이 힘들었을까? 그것은 내가 바라보던 세상은 근시, 난시로 정확하게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교정된 안경을 끼고 바라본 세상은 너무나 다르게 보인다. 교정된 안경이 바로 감사이다. 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 바라보는 대로 느끼게 되고, 세상은 느끼는 대로 행복이 달라진다. 그렇다면 행복하고 싶은 우리는 감사로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